또 불량 식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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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가 「뿌리를 뽑겠다」고 큰 소리를 치면서도 그렇게 안 되는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 가운데 가장 심한 것이 불량 식품 문제인 것 같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시판되는 식품 중에는 불량·불법 식품이 구석구석에 널리 퍼져 있고, 간혹 그것이 당국의 단속의 손에 걸려 공개될 때면 한결같이 당국은 이를 계기로 불량 식품을 「근절」시키겠다고 서슬이 퍼렇게 덤비는 것 같지만 결국은 흐지부지 꼬리를 감춘다. 그러다가 새삼스럽게 비슷한 사건이 일어나곤 한다.
이것이 우리 나라 식품 행정의 한심스런 현실이다. 언제까지 불량 식품 제조와 단속 행정의 「개미 쳇바퀴 돌기」식의 숨바꼭질이 계속될 것이며 언제쯤이나 국민은 그 피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보건사회부가 지난 6개월 동안 불법·불량 식품을 단속한 결과를 보면 이런 짜증과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간장·된장 등 장류의 28%정도가 불량·불법 식품이고 이밖에 어묵·빵·과자류·절임 식품·면류·청량음료·두부·식용유도 상당 비율이 역시 불법·불량인 것으로 판명됐다고 한다 (중앙일보 3월22일자). 무려 1만4천여건에 5천3백만원 상당의 식품이 단속에 걸렸다고 하니, 이 밖에 적발되지 않은 것까지를 고려하면 우리 주변에 만연된 불량 식품의 실상은 어느 정도인지 상상을 불허한다.
이렇게 불량 식품이 광범위하게 유통되고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일부 악덕업자들의 몰지각하고 반사회적인 상행위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근절시킬 책임은 우선적으로 이들을 감시하고 통제해야 할 책무가 주어져 있는 행정부국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식품 위생 행정의 주요 기능은 국민이 상용하는 식품의 품질 기준을 정하고, 품질이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한 식품은 생산과 유통을 금지시킴으로써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닌가.
일부 악덕업자의 불량 식품 제조·판매는 양심적이고 우수한 제품에 대한 신뢰까지에 손상을 입히게 되고, 결국 소비자가 외제 식품에 이끌리게 된다면 이는 국가 이익에도 큰 손실을 초래하게 된다. 더군다나 올림픽 등 대규모 국제 행사를 앞두고 국산 식품에 대한 국제적인 평가가 훼손된다면 결국 우리에게 식품을 수출하는 외국 업자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결과가 될 것이다.
광복 이후 우리 나라 식품 공업은 꾸준한 발전을 이룩해 왔으나 아직도 대부분이 영세성을 면치 못한데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지난 82년 말 현재 국내 식품 제조 업체 약 4천5백개소 가운데 종업원 1백명 미만을 고용하고 있는 업체가 94%에 달하며 20명 미만의 가내 수공업 규모만도 72%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대기업은 전체 식품 제조 업소의 5%에 미달하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따라서 불량 식품 근절을 위해서는 일시적인 투망식 단속보다는 이들 영세업자들에 대한 기술 지도와 시설 투자 유도부터 해야한다. 이미 제조·유통되고 있는 불량 식품에 의해 소비자가 피해를 본 뒤에 단속하기보다는 전반적인 식품 품질의 향상을 위한 행정 지도가 강화돼야한다.
식품업계도 자체적으로 이러한 악덕업자의 제재와 근절에 앞장서야한다. 불량 식품의 유통은 결국 국산 식품 전반에 대한 신용을 실추시키고 나아가서는 식품 산업 전체를 위축시키는 암적 요소다. 자율적인 규제로 신뢰 회복에 노력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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