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태형의 음악이 있는 아침] 낯설지만 감동적인 크라이슬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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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연주가 중 ‘가장 완벽에 가까운’ 바이올리니스트가 야샤 하이페츠라면, ‘가장 사랑받았던’ 이는 프리츠 크라이슬러 아닐까요.

달콤한 톤과 유려한 보잉으로 듣는 이를 사로잡았던 크라이슬러는 작곡에도 뛰어났습니다.

앙코르로 사랑받는 명곡들을 썼던 크라이슬러였지만, 당대에는 작곡가보다 바이올리니스트로 더 알려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작품을 타르티니나 비발디, 푸냐니 등의 미발표곡, 혹은 자신이 모방한 작품이라고 거짓으로 발표했습니다.

청중과 평론가들의 반응은 당연히 좋았습니다. 아무런 의심 없이 작품에만 귀 기울였던 거죠.

그는 자신의 작품임을 나중에 밝혔습니다. “이름이 바뀌어도 가치는 그대로다”라는 크라이슬러의 지론대로였습니다.

이제 그의 작품은 고전 중의 고전이 되었습니다.

푸냐니의 미발표곡이라고 소개했던, 크라이슬러의 ‘서주와 알레그로’는 특히 매혹적인 곡입니다.

서주에서는 어딘지 슬픔이 서린 우아한 왕가의 위엄이 느껴집니다.

템포가 빨라지는 알레그로에서는 매혹적인 음표들이 뭉쳐서 경사를 따라 굴러 내려가는 것 같습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아니어도 충분히 감동적입니다. 아비 아비탈의 만돌린과 크세니야 시도로바의 아코디언 연주로 들어보시죠.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ㆍ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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