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헌정 중단이 부정적 역사관 심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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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민정당은 23일 당사에서 「한국 현대사 재조명」이란 세미나를 열었다.
이 문제는 노태우 대표위원이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 왔고 올해 민정당의 중요 정책 과제로까지 올라가 있는데 민정당이 이처럼 중시하는 것은 젊은층이 해방 후의 우리 현대사를 왜곡·부정적인 시각에서 봄으로써 현실 비판·부정의 체질을 보인다는 문제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이번 세미나의 목적을 △한국 현대사에 대한 자기 부정적 시각과 해석에 따른 국체의 정통성 시비 △일부 대학생의 부정적 인식의 타파에 두었다고 설명했다.
세미나에서 주·부제 발표자들은 해방 이후 △빈번한 정치적 변혁 △고도 성장에 따른 계층간 위화감 등으로 부정적인 면이 없지 않았으나 그 반면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양상도 있었는데 부정적인 측면만 보려는 것은 극복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하면서 나름대로의 원인과 처방을 제시했다.
주제 발표를 한 정희채 서울시립대 학장은 부정적 시각의 원인으로 △교조주의 △완벽주의 등을 예시했다.
우선 정 학장은 『우리에게는 어떤 이념에 매료된 나머지 이것이 하나의 고정관념으로 교조주의화 되는 경향이 있다』며 이 같은 자세가 오히려 문제를 오도해 왔다고 강조했다.
즉 서구 민주주의가 갖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념이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한 전제 등을 고려에 넣지 않은 채 고정관념으로 굳어진데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의 헌정사를 보니 너무 거리가 멀어 「우리는 민주주의 한번 제대로 못해 보는 열등 민족인가」라는 자학으로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이광훈 경향신문 논설위원도 『광복 이후 지나치게 이상적인 모습으로 제시되었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기대 폭발과 좌절이 정치에 대한 불신 풍조를 확산시키면서 현대사에 대한 부정t심리가 하나의 고정관념으로 굳어져 버렸다』고 분석.
정 학장은 또 「보통인이 주도해 온 역사를 보고 철인이 아닌 결함투성이의 보통인이 통치를 했다 해서 보통인으로서 최선을 다한 측면까지 매도하며, 보통인 이기에 저지른 자질구레한 잘못까지 파헤쳐 한꺼번에 부정해 버리려는 태도」, 즉 완벽 주의가 현대사 부정의 요인이라고 주장했다.
김형효 의원(민정)은 정 학장의 분석과 비슷한 「명분 집착에 따른 도덕론」 이 현대사에 대한 부정 심리 형성에 기여해 왔다고 보았다.
즉 역사를 불완전한 발전의 시각에서 파악하지 않고 현실을 언제나 관념 속에 남아 있는 이상적 명분에 맞추어 「즉결심판」해 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1백점이 아니면 부정당하고 부도덕하며 90점, 75점 정도의 중간 단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광훈 위원은 광복 40년사에 대한 부정적 역사 인식이 심어진 또 하나의 원인이 잦은 정변으로 인한 헌정 중단과 새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전시대의 어두운 측면을 크게 부각시킨 데 있다고 분석했다.
즉 자유당이래 새로 출범한 정권이 출범의 당위성을 찾기 위해 전시대의 비리를 극대화한 것이 현대사에 대한 부정 심리를 더욱 부채질했다는 것.
현대사 부정의 배경을 설명한 정 학장은 과거 공화국에 대한 「밝은」면을 이렇게 예시했다.
우선 해방후 단독 정부 수립을 둘러싸고 제기된 대한민국의 정통성 시비와 관련, 정 학장은 『△1947년은 냉전 체제의 국제 관계로 미소 타협이 불가능했으며 △북한은 대한민국 수립 이전에 이미 실질적인 단일 정부를 수립해 놓은 상황에서 불가피했다』고 역설했다.
또 비록 운영면에서는 실을 크게 거둘 수 없었지만 우리 민족 사상 처음으로 근대적 민주주의·법치주의 국가를 수립할 수 있었다는 것은 평가해야 한다는 게 정 학장의 주장.
제2공화국에 대해서도 물론 무능과 부패, 무정부주의적 혼란을 유발했다는 점은 비판받아야 하나 법적·제도적으로 뿐만 아니라 운영면에서도 민주정치를 시도해 보았다는 점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3, 4공화국에 대해 정 학장은 『이시기의 마이너스치에 대해 눈감아서는 안된다』고 전제하면서도 『다만 어쩔 수 없는 부작용과 의도된 잘못은 구분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시 말해 이 기간 중 벌인 정부 주도형의 동원 체제적 개발 전략으로 서구 민주주의적인 여러 가지 제도와의 간격이 넓혀져 민주화냐, 능률화냐의 국론이 분열되기 시작한 것은 부정적 요소이나 민족사의 거시적인 흐름에서 보면 「일대 변혁」의 기초를 다진 의미 있는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위원은 1공화국의 정통성 시비와 관련, 『당시 이승만 정권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지 못하고 친일 세력을 배제하지 못한 약점을 안고 출범했지만 광복 후의 혼란을 극복하고 독립 정부를 출범시킨 사실까지 부정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주학중 KDI선임연구위원도 1차 석유 파동과 같은 국내외 정세의 격변에도 불구, 우리 경제는 지속적인 성장을 해 왔다며 『물론 과욕적인 중화학공업 추진과 충격적 긴급조치로 적지 않은 부작용이 유발된 것은 시인해야 하나 전반적인 평가는 긍정적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고 주장했다.
한편 김 의원은 재조명 작업의 안으로 건전한 현실주의의 가치관 교육, 즉 인간이나 역사에는 선악의 양면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시키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안희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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