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심사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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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응모작의 수가 예년에 비해 떨어지지 않은 소설 부문의 특색은 가족의 구성원 사이에 있는 갈등과 증오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를 밝히는 것은 문학사회학이 해야할 일이겠지만 최종심에 오른 다섯 편의 작품은 예년의 수준을 능가하는 수작이었다.
그러나 우선 이빈의 「살아있는 입」 과 이민서의 「덫」 은 구성력과 문장력에 있어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지만 전자는 사용된 에피소드가 너무 현실과 가까와서 작가의 상상력의 개입이 부족한 이유로, 후자는 기본적인 사건들의 동기가 뚜렷하지 않아 설득력이 약한 이유로 다음 기회로 미루어졌다. 마지막까지 남은 세 편의 작품은 어느 쪽을 당선작으로 정해도 좋을 정도로 그 우열을 가릴 수 없었다.
최문희의 「겨울 허수아비」 는 국회의원 출신의<아버지>동상 제막식을 중심으로 한 주변인물들 하나하나를 살아 움직이게 한 좋은 작품이고, 김혜성의 「나는 창으로 다가갔다」는 방송국 AD로 겨우 정착하게 된 주인공의 패배를 그린 탁월한 감각의 작품이며, 김정하의「망각 속을 흐르는 강」은 6·25라는 비극적 체험을 가진 주인공이 배꼽을 잃게 되는 과정을 추적한 무게 있는 작품이다.
우리는 이 세 작품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 제외된 다른 두 편이 너무 아쉽게 느껴져 오랫동안 결정을 보지 못했다. 등단한 다음에 모두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판단된 재능 있는 신인들 가운데 하나를 뽑는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가 「망각 속에 흐르는 강」을 선택한 것은 순전히 심사위원의 취향에 의한 것이다. 심사위원 이문구·이청준·김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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