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명·이순·현길언의 근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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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정종명의 첫 소설집 『오월에서 사월까지』 (창작예술사) 는대부분 오늘의 도시사회에서 벌어지고있는 추악한 양상들에 대한 비판적 시선으로 점철되고 있다. 여기 수록된 12편의 단편들은 학생회장 선거로부터 기업체의 음모에 이르기까지, 또는 을지문덕장군동상이나 시인, 혹은 양심적인 교수의 천거·추방·좌절로부터 이른바 저명인사의 위선과 그를 둘러싼 모략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우리시대의 추악한 면모들을 곳곳에서 폭로하고있다.
그런 모습들을 가장 정교하게 해부한 작품이 『이오』과 같은 것으로 친구라고 믿었던 사장이 사실은 가장 음흉한 방법으로 회사에서 몰아내는 이이야기는 우리가 얼마나 불신과 배척의 시대에 살고 있는가를 자문하게끔 만든다.
그러나 정종명외 이러한 비판은 상업주의에 물들어 가는 세태를 풍자하는 최기인의 『다로선생』(호암) 처럼 때로는 너무 상식적이고 혹은 엽기성까지 띠어 (「탈」의 경우) 세태소설의 가벼운 터치에 멈출 위험을 갖고 있다.
『우리들의 아이』 예서 젊은 부부의 중산층으로의 상승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들을 묘사했던 이순은 그의 두번째 창작집 『백부의 담』(예전)에서 화자의 성장기로 거슬러 올라가 큰아버지 부부와 아버지·어머니, 그리고 학생시절 친구들의 삶을 돌이켜 보여줌으로써 해방이후 60년대까지의, 우리의전시대의 세상살이의 모습을 되새기게 해준다.
과거란 그때는 힘들고 괴로왔지만 이제 돌이켜보면 재미있고 신선한 회상이 된다는 말그대로 작가는 우리의 그랬던 모습들을 유쾌하게 상기시켜 주고 있고 그래서 잘 읽히는, 그러나 사사로움의 영역을 크게못 벗어나는 작품집이 되기도하는 가운데 「어떤무용」처럼 발랄한 애수로 젖어 오는 좋은 소설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현길언의 두번째 소설 『우리들의 스승님』 (문학과 지성사) 은 정종명이나 이순이 다루고 있는 유의 세태적인 모습들에서 역사적 책임을 물음으로써 우리의 타락의 근원을 캐는 매우 진지한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다.
『용마의 꿈』 의 무대가된 제주도의 제약성을 여기서 벗어나는 이 작가는 존경받는 교육자의 부도덕한 과거, 개발과 성장에 가려진 왜곡된 삶, 그것들을 감추려는 폭력들에 시선을 깊이 둠으로써 우리의 오늘의 잘못됨들이 진실한 역사를 가리고 허와의 무책임으로 포장된 불성실의 태도에서 빚어진것임을 고통스럽게 폭로하고있다.
지적인 정직성을 추구하면서도 흥분을 좀처럼 드러내지않는 이 작가의 채찍질은 그러므로 우리에게 더욱 가열하게 달려들고 우리의 현재적 양상을 역사적 시선으로 성찰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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