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 세균 배양, 비만·당뇨 치료제 활용 가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사람이나 동물의 장 속에 사는 특정 세균으로 비만·당뇨병 등 대사성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권미나 서울아산병원 융합의학과 교수팀은 장내 세균인 ‘박테로이데스 에시디페시언스’가 체중과 혈당을 줄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30일 발표했다.

기사 이미지

연구팀은 자가섭식 유전자(Atg7·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에너지를 낼 수 있게 하는 유전자)가 없는 실험용 쥐가 정상 쥐보다 체중과 복부 지방량, 혈당이 낮다는 특징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후 이 쥐의 분변을 채취해 유전체 배열을 분석했더니 장내 세균인 ‘박테로이데스’가 정상 쥐보다 많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 세균을 배양해 정상 쥐에게 먹이자 같은 양의 사료를 먹더라도 체중과 지방량은 현저히 줄고 혈중 인슐린 양이 늘면서 혈당이 줄어들었다.

아산병원 연구팀 메커니즘 규명
지방분해 효소 촉진해 체중 감소
혈당 감소 호르몬도 활성화시켜

연구팀은 “장내 세균인 박테로이데스는 복부의 지방세포와 소장의 호르몬 조절 상피세포에 작용한다. 이에 따라 지방 분해효소(PPARα)를 활성화해 몸속의 지방을 연소시키면서 체중이 줄고, 혈당 감소 호르몬(GLP-1)이 활성화되면서 체내 혈당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건강한 사람의 몸속에는 100조 개가 넘는 세균(미생물)이 살고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장내에 머문다. 이번에 비만·당뇨병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박테로이데스도 수많은 장내 세균 중 하나다. 이러한 장내 세균이 우리 몸의 소화·면역 기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2006년 미국 워싱턴대의 제프리 고든 교수는 장내에 서식하는 세균의 종류에 따라 살이 찌거나 날씬해질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2006년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에 게재했다. 하지만 장내에 사는 세균이 숙주인 사람의 체중과 혈당 조절에 작용하는 원리는 이번 연구를 통해 처음 확인됐다.

권미나 교수는 “항생제를 남용하면 장내 세균의 대사 조절을 방해해 비만과 당뇨병을 키울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며 “유산균 같은 인체 유익균을 살아 있는 채로 섭취하게 만든 프로바이오틱스 제품처럼 박테로이데스를 대량 배양해 비만이나 당뇨병 등 대사성 질환 치료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구팀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점막 면역학(Mucosal Immunology)’ 최근호에 게재됐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