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도요타 근무 혁명 뒤엔 ‘이쿠멘’이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남정호
남정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기사 이미지

남정호
논설위원

일본 도요타자동차가 파격적인 ‘직원 3분의 1 재택근무제’를 선언하자 애꿎은 국내 기업에 불똥이 튀었다. 이번 조치가 저출산 대책의 일환이라는 게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탁해졌다. “한국이 더 심각한데 우리 기업은 뭐하냐”는 타박이 쏟아졌다.

하지만 이는 앞뒤를 모르는 소리다. 도요타가 앞장섰다기보다 사회 분위기가 이 회사를 이렇게 이끈 측면이 강하다.

결정적 역할을 한 건 2010년부터 불붙기 시작한 ‘이쿠멘(イクメン) 운동’이다. 이쿠멘이란 ‘기른다(育)’는 뜻의 일본어 발음 ‘이쿠’와 ‘남성’의 ‘멘(man)’이 합쳐진 신조어다. 육아에 전념하려는 아빠를 뜻하는 것으로 굳이 번역하자면 ‘애 키우는 남자’쯤 될 것이다.

이 용어는 2006년 한 광고회사에서 육아에 관심 있는 아빠들이 ‘이쿠멘 클럽’이란 모임을 만든 게 언론에 소개되면서 전 사회로 확산됐다. 이후 일반인의 관심이 커지자 2010년 후생노동성은 아예 ‘이쿠멘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다.

아기자기한 것들에 열광하는 일본답게 캠페인에는 오만 아이디어가 동원되고 있다. 유명 연예인과 정치인을 비롯해 누구든 육아에 매진하겠다고 글로 약속하는 ‘이쿠멘 선언’, 그리고 이런 부하 직원들을 돕겠다는 상사들의 ‘이쿠멘 서포터 선언’ 등의 코너가 마련돼 이들의 사연 등이 홈페이지에 소개된다. 최근엔 유자키 히데히코(湯崎英彦) 히로시마 지사가 “셋째 아이가 생겨 한 달간 육아휴직을 간다. 상관이 모범을 보여야 아랫사람이 마음 편히 간다”는 글을 남겨 눈길을 모았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로 최근 오사카에는 아빠들에게 육아 요리, 가사 등을 가르치는 ‘이쿠멘 대학’이란 학원까지 등장했다. 남자 직원들의 육아휴직을 독려하겠다는 기업들도 줄을 섰다. 그중 하나가 바로 도요타였던 것이다.

도요타는 매월 19일을 ‘육아의 날’로 지정해 모든 직원이 정시퇴근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이 회사 노사가 모여 이쿠멘 지원 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게 이번 도요타의 재택근무제인 셈이다.

정부는 10일 지난해 전체 육아 휴직자 중 5.6%에 그쳤던 남성 비율을 2020년까지 15%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정부만 나선다고 될 일이 아니다. 이 역시 기업과 일반 시민 등 모든 사회 구성원의 공감과 협력에 의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

남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