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하의 건강 비타민] 일부 전립샘암, 수술 않고 지켜보는 게 좋은 선택될 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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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모(68·경기도 용인시)씨는 2011년 한 대학병원에서 전립샘암 진단을 받았다. 병원은 수술을 권했지만 안씨는 수술하지 않는 치료법이 있다는 얘길 듣고 강남세브란스병원을 찾았다. 안씨는 지금까지 수술하지 않고 살고 있다. 3개월마다 혈액검사를 하고 매년 전립샘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을 해 암의 변화를 확인한다. 필요할 경우 조직검사를 한다. 안씨는 처음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주변에서 “왜 암을 놔두느냐” “암이 커지면 어떻게 할 거냐”고 충고했다. 불안할 때가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은 암과 더불어 사는 삶에 익숙해졌다.

암이 확인되면 제거가 기본이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일부 전립샘암은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 없이 지켜봐도 된다. ‘적극적 감시(active surveillance)’라고 한다. 불안을 감수하면서 암을 지켜보는 이유는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 때문이다. 기술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전립샘암 수술을 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요실금이나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 배뇨 장애, 발기 부전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방사선 치료도 마찬가지다.

적극적 감시가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전립샘암이 천천히 진행된다는 특징 때문이다. 빨리 악화되거나 잘 전이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비율이 낮다. 미국에서 전립샘암 진단을 받은 적이 없는 50세 이상 남성 사망자 37명을 부검한 결과 12명(32.4%)에게서 전립샘암이 확인됐다. 천천히 진행돼 모르고 지나가기도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누구나 적극적 감시 대상이 되는 건 아니다. 놔둬도 문제가 없고 효과적인 감시가 가능해야 한다. 이런 원칙에 따르되 세부 기준이 필요하다. 한국은 미국 기준을 원용한다. 대한비뇨기과학회가 미국 존스홉킨스대·UC샌프란스시코대·마이애미대·메모리얼 슬로언-케터링암센터 연구 등을 종합해 기준을 만들어 올해 발표했다.

전립샘암의 적극적 감시 대상이 되려면 ▶초기(1기)에 ▶암세포의 악성도가 나쁘지 않아야 하고 ▶전립샘 특이 항원(PSA)은 10~15 ng/mL 이하(전립샘 조직에 문제가 있으면 PSA 상승) 등 여섯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 조건에 맞아 적극적 감시를 선택하면 10년 안에 암으로 사망할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

그러나 국내 전립샘암 환자들은 서양인과 다소 차이가 있다. 국내 환자 5000여 명을 관찰했더니 똑같은 적극적 감시 대상에 들어도 암 조직이 서양인에 비해 불량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인에게 맞는 기준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학자들이 이 기준을 만들고 있다.

적극적 감시 대상이 돼도 중간에 예후가 나빠지면 언제라도 수술해야 한다. 미세한 예후 변화를 잡아내는 것은 숙련된 의료진의 몫이다. 2014년 유럽비뇨기과학회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적극적 감시 환자의 30%는 2년 안에 수술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PSA 수치 증가(48%)가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악성도가 올랐거나(27%) 환자가 원해서(10%) 등이다. 환자가 원하는 경우는 불안 때문이다. 적극적 감시 대상이 되면 혈액검사(3~6개월 간격), MRI와 조직검사(1~3년 간격) 등을 통해 병의 진행 여부를 효과적으로 감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환자와 의사의 신뢰가 중요하다.

정병하 강남세브란스병원 비뇨기과 교수

◆정병하 교수 ▶연세대 의대 졸업 ▶연세대 의대 비뇨기과학교실 주임교수 ▶미국비뇨기과학회(AUA)·대한비뇨기과학회 정회원 ▶현 아시아·태평양 전립샘학회(Asian Pacific Prostate Society)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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