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근일기<16>본지 독점게재|잠못이루는 밤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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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69년9윌29일>
오늘 결심공관이 있어 나도 부축을 받아 나갔다. 구형은 한희석등이 15년, 나와 이재학·임철호등이 12년, 그리고 정문흠·유각경 두사람은 4년6개월의 징역이다. 기획위원중 두사람만 유독구형이 낮은 것은 개표삭감발표의 책임을 묻는 허위공문서 작성혐의의 추가기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기획위원중 한희석등 제1그룹은 최인규내무의 부정선거 계획에 걱적 개입했고 우리들 제2그룹은 소극적이지만 관련되었다고 본 검찰의 구형이다. 변론에선 한 복변호사의 법이론이 명쾌하다. 이승만박사의 일면만을 내세워 깎아내린 대목은 나로선 공감할수 없었지만 나에대한 변론에선 동창으로서의 열성이 보여 정을 느꼈다.
모두들 최후진술을 했지만 나는 변으로 말을 할수가 없어 두세줄을 적어냈다. 여당간부의 한사람으로 부정선거를 막지못한데 대해 책임을 느끼고 국민앞에 사죄한다는 내용이다.
우리와는 따로 심리해 내가 직접 본것은 아니지만 최내무가 최후진술에서 회오의 눈물을 흘리며 그의 심경을 솔직이 토로할때 과오는 크지만 인간으로서의 동정이 방청석의 분위기 였다고들 한다. 나는 이제 그를 내마음에서 용서할 차례다.

<◇60년10윌8일>
데모군중에 대한 발포책임등 서울지법 형사1부의 선고공관이 있었다. 최고형엔 사형도 있었지만 다른 많은 피고인들에게는 가벼운 형량이었다. 이성있는 재판이라면 오늘의 서울지법 형사1부의 판결은 예상한 대로다. 나는 1주전 한 복변호사에게 형사1부의 판결도 우리를 심리하는 형사3부가 예정한 10월25일에 함께 선고공판을 하도록 조정함으로써 재판부의 선고가 다른 재판부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교섭해보라고 했지만 뜻대로 안된 모양이다.
내가 한변호사에게 이런 부탁을 한것은 형사1부가 법에 따른 옳은 판결을 했을때 일부의 반발이 있고 그것이 우리들의 판결에 영향을 줄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60년10붤11일>
염려했던 데모가 일어났다. 지법1부의 선고내용을 규탄하고 혁명입법을 요구한 데모다. 재판부가 피신하고 의사당이 짓밟혔다는 소식이다. 더우기 의사당에 난입한 데모대에 굴복해 민주당 지도부가 혁명입법을 약속하는 악수를 했다는 기막힌 소식이다.
정치보복적인 혁명입법은 하지않겠다고 선언했던 정부가 소수의 데모에 당황해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폐기하려하다니…. 의사당난입이라는 불상사와 신법이 없는 정부, 도대체 이 나라는 어디로 가려나. 특별혁명입법은 보복을 보복으로 씻는 악순환을 가져오지않는다고 누가 보장할것인가.

<◇60년10윌25일>
오늘로 예정됐던 1심판결이 연기됐다. 10월11일의 데모로 민의원이 혁명입법을 결의하고 헌법개정안을 이미 공고했다. 동시에 부정선거및 데모대에 대한 발포사건 관련 피고인에 대한 형사소추절차는 특별법이 제정될때까지 중지한다는 이른바 민주반역자임시처리법이 제정된 탓이다.

<◇60년11월4일>
며칠째 잠못 이루는 밤이다. 3개월의 법원 생활로 건강은 다소 나아졌다. 그렇지만 헌법이 개정되고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가 설치될 날이 다가온다. 그날이 오면 보석은 취소되고 나는 다시 잡히는 몸이 되어야한다. 다시 감방생활-아마도 몇달 안에 내 생명은 끝이 난다. 나는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릴것인가. 아니면 살기 위해 내가 할수 있는 일을 해야할것인가. 어느 쪽도 선뜻 내키지않는 망설임속에 밤을 지새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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