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에 살다] (23) '시리우스' 윤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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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자일을 묶고 지냈던 1973년 무렵 윤대표씨는 신문에 실린 회원모집 광고를 보고 엠포르산악회에 가입했다. 엠포르산악회에서 최고의 공격수로 떠오른 그는 어느 날 서울 합정동 로터리를 지나다 그토록 갖고 싶었던 스위스제 헹케 비브람(겨울용 중등산화)을 신고 있는 사람과 우연히 마주쳤다.

윤씨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 비브람의 주인이 악우회 회원 백승기씨였다. 그 인연으로 윤씨는 1976년 10월 악우회에 몸담게 됐다.

악우회 회원들과 77년 도봉산 선인봉의 모든 코스를 연결해 오르는 연장등반에 성공했고, 이듬해에는 설악산 선녀봉을 초등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손칠규씨와 자일을 함께 묶고 토왕폭 제3등에 도전한 것이다.

무예의 고수처럼 세 자루의 아이스 해머를 적절히 휘두른 윤씨는 78년 2월 4일 오후 4시쯤 토왕폭 상단 3분의 2 지점에 자리잡은 테라스에 올라섰다. 뒤이어 손칠규씨는 5시15분쯤 테라스에 닿았다.

그 테라스 위쪽의 이른바 '얼음 골짜기'에서 윤씨는 토왕폭 등반의 최대 고비를 맞았다. 얼음 골짜기는 암벽 위를 살얼음으로 살짝 도배해 놓은 듯했다. 그 얼음층이 너무 얇아 아이젠과 아이스 해머의 이빨을 제대로 물어주지 못했다. 그 골짜기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윤씨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피로와 허기로 지쳐가는 몸으로 사지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 치는 토왕폭의 사나이를 두고 해는 함지덕 머리 위로 훌쩍 넘어가 버렸다. 동시에 기온이 뚝 떨어졌다.

두 손의 감각과 의식을 잃어가던 윤씨는 푸석푸석한 얼음에 얼굴을 마구 문질렀다. 순간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위기 상황임을 몸에 일깨워주려고 윤대장은 자신의 손가락을 마구 깨물었다.

자꾸만 허물어져 내리는 도배 빙벽이어서 아이젠의 앞이빨을 박는 프런트 포인팅 기술이 통하지 않았다. 때문에 윤씨는 킥 스텝으로 억지 발디딤을 만들거나 양 무릎을 얼음벽에 바싹 붙이며 어둠 속의 얼음 골짜기를 조금씩 조금씩 올라가야 했다.

오후 7시40분, 그렇게 사투를 벌여 얼음 골짜기를 무사히 빠져나온 윤씨는 뒤따라 올라온 손씨를 정상에서 뜨겁게 껴안았다. 1박2일에 걸쳐 12시간30분 만에 이룬 토왕폭 빙벽 제3등이었다.

이 등반에서 토왕폭 빙벽 3백m 구간을 앞장서 오른 윤씨는 1년 뒤인 79년과 80년 두차례에 걸쳐 당시 한국산악계 최대 과제였던 알프스 3대 북벽(아이거 북벽.마터호른 북벽.그랑드 조라스 북벽)을 한국 산악인으로는 처음으로 등정하는 개가를 올렸다.

그 위업의 자일 파트너였던 허욱씨와 연계시켜 윤씨가 산악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나는 겨울 하늘에서 찬란히 빛나는 시리우스라는 별에 비유한 적이 있다.

박인식 <소설가.前 사람과 산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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