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한일 관계사 바로잡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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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재일 사학자 이진희교수의 고구려및 발해문화권 현장답사는 광개토대왕비문의 변조로 그룻된 한일관계사의 근본을 바로 잡을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것은 물론, 한반도북방거주 한민족이 세웠던 발해의 찬란한 문화유산을 우리에게 처음으로 선보였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었다.
지난20일부터 27일까지 4회에 걸쳐 본지에 연재된「광개토대왕비현장답사기」를 끝내면서 필자 이교수와 답사에 얽힌 이야기들을 대담으로 엮어본다.
-『광개토대왕비문은 변조됐다』는 그간의 이교수주장이 이번의 한-중-일 3국공동현장답사를 성사시킨것인가.
▲13년전에 발표한 나의 광개토대왕비문에 관한 연구논문이 하나의 동기를 부여했다고도 할 수 있다. 나의 주장에 대해 일본·중공학자들은 그동안 부정적 반응을 보였고 지난1월 동경에서 열렸던『4∼5세기 동아시아, 호태왕비를 중심으로』라는 심포지엄에서도 내의견을 존중한 학자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다행히 이를 주최한 요미우리 (독매) 신문이 문제의식을 갖고 공동답사를 추진해 준 것이다.
-답사후 현지 (장춘) 에서 소개된 심포지엄에서는 달라진것이 있는가.
▲그동안 의문시되던 일본의 척본을 중심으로한 비문 연구25개 부분가운데 8개부분은 변조되었을 가능성이 확인되었다. 이를 근거로 앞으로 정밀한 과학조사가 뒤따라야 한다는데 대다수학자들이 수긍했다.
-그렇다면 일본이 서기 391년에 백제·신라를 무너뜨리고 신민으로 삼았다는 소위「임나일본부」설은 무너지게된다는 이야기인가.
▲그것은 32년전 고구려의 고분벽화연구를 시작한 이후 줄곧 나를 사로잡아온 꿈이다. 그러나 광개토대왕비는 한민족의 유물임에도 불구하고 한국학자들이 쉽사리 가까이갈수 없고 북한학자들과의 협력도 현단계로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의 주장이 정세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상당한 노력과 시일이 소요되어야 할것이다.
-남북학자들이 고대사에 대한 연구를 공동으로 추진하는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은 전부터 거듭해온것으로 아는데 그필요성은.
▲한반도의 분단은 민족과 국가의 비극일뿐만 아니라 역사와 문화의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북한에도 신라유적이 있고 남한에도 고구려의 유물이 있기 때문에 학자들이 자유롭게 왕래할수 없는 상황에서는 절름발이 연구가 될뿐이다.
이런점에서 민족의 역사, 조명되지 않은 고대문화에대한 남북한공동연구는 스포츠교류나 이산가족상호방문 못지않게 중요하다.
-중공의 유적보존수준은.
▲광개토대왕비에 관한한 우리가 한민족의 역사로 계승해야할 유적이지만 중공은 이를 그들의 중원문화가운데 소수민족역사에 포함시켜 보호하고 있었다.
88년에 가서야 이 유적들에 관한 논문화·도안화가 이루어져 책자가 발간된다고 할만큼 재정적 뒷받침이 부족, 발해유물은 목록조차 없는 상태에서 이번에 처음 공개됐다. 앞으로는 만주에서 한반도를 거쳐 서일본까지 이어지는 고대도래인의 발자취를 캐어보고싶다. 10여일의 당사로 고구려문화를 보았다고는 말할수 없어 그 발상지인 동가강 (압록강지류) 유역부터 찾아가 우리나라의 독자적·전형적인 성곽이 어떻게 이루어져 내려왔는가부터 파악하는것이 남은 과제다.

<홍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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