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푸른 황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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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금은 구약성서의 '창세기'에도 언급될 정도로 인간과 오랜 인연을 맺어 온 금속이다. 일부 학자들은 인간이 최초로 사용한 금속이 구리며, 그 다음이 금이라고 말할 정도다.

이런 금은 산업시대 이전 세계 무역의 원동력이었다. 마르코 폴로의 모험이나 콜럼버스의 항해도 동양의 금을 구하려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근세 유럽의 발전도 금.은의 무역에서 비롯됐다.

그런데 산업혁명 후 이런 금을 대신할 검은 황금이 나타났다. 바로 석유였다. 석유는 세계 각국이 산업지배력을 위해 경쟁을 벌인 최초의 액체물질이었다.

석유를 확보하기 위한 각국의 피나는 전쟁을 통해 석유시장을 지배한 카르텔인 이른바 '세븐 시스터스'라고 하는 초국적 석유재벌들은 화려한 전성기를 맞았다.

그런데 최근에 또 다른 액체황금이 등장했다. 바로 푸른 황금(Blue Gold), 수자원이다. 원래 '블루 골드'는 캐나다의 환경학자 모드 발로(Maude Barlow) 등이 2002년에 출간한 책의 제목이다. 그들은 이 책에서 물이 인류의 생존과 산업을 위해선 석유 못지않게 중요한데 이미 소수의 세계 초국적 기업들의 물에 대한 지배가 강화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물은 인간의 생존뿐만 아니라 현대산업에도 필수적이다. 자동차 한대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물이 직.간접적으로 40만ℓ라는 통계도 있다. 컴퓨터 생산을 위해서는 역시 탈이온화한 막대한 물이 필요하다. 미국 컴퓨터산업은 매년 1조5천억ℓ를 사용하고 3천억ℓ의 폐수를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초국적 회사들의 국경을 넘는 수자원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현재 이 분야의 세계적 메이저는 미디어 재벌로 알려진 비벵디와 프랑스의 수에즈, 그리고 독일의 RWE다. 비벵디는 자신들의 사회간접자본 투자 중 수자원 관련 비중이 50%를 넘는다.

또 독일의 RWE는 영국 최대 민영수도사업체인 템스워터, 미국 최대 수도사업체인 아메리칸 워터워크스 등을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 현재 이들 3개사는 수자원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특허 및 개발 노하우를 사실상 독식하고 막대한 로열티를 벌어들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전 세계 1백50여개국 이상, 3억명 이상의 인구가 이 같은 다국적 회사의 영향권하에 들어가 있다고 말한다. 또 다른 액체황금 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