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생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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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얼마 전 막내 녀석이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다. 아이를 업고 동네 병원을 찾아갔더니 손을 쓸 수가 없다 기에 허둥거리며 종합병원을 찾아갔다. 층계를 올라 소아과 앞에 가보니 이상하게 한적했다. 요즘의 종합병원이 북적거린다던데 웬일인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우선은 품속에서 할딱거리는 어린 생명이 안쓰러워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더욱 이상한 것은 의사나 간호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였다. 마음은 급하고 의사는 오지 않아 나는 소퍼에 앉아 책을 보는 한 소녀에게 의사가 언제 오시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이상하다는 듯이 내 얼굴을 쳐다볼 뿐 말이 없었다. 내가 다시 다그쳐 물으니 오늘은 일요일이어서 휴진이라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무 다급한 김에 나는 그날이 일요일인 것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 소녀에게 그렇다면 의사도 없는데 학생은 누구를 기다리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이 동네에 사는 대학입시 준비생인데 요즘에는 도서관이 부족해서 아예 도서관에 갈 엄두도 못 내고 일요일이면 휴진인 종합병원 로비나 대합실이 공부하기에 편하다고 말했다.
나는 응급실에 들러 급한 불을 끄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식에 대한 걱정이 사라지면서 그 소녀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렇게 잘 살게 되었다는데 왜 학생들은 그 퀴퀴한 약 냄새가 품기는 병원복도에서 공부를 해야하나? 이는 뭔가 잘못된 일이다. 25년 전 내가 갈 곳이 없어 장충단공원에서 추위에 떨며 책을 읽을 때는 그나마 낭만이라도 있었다.
나는 일선의 한 교직자로서 「요즘 학생×들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하는 식의 말을 들을 때 참으로 안타깝다.
어른들은 그들을 나무랄 만큼 떳떳이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학비를 대준 것만 앞세울 일이 아니며 데모한다고 꾸짖기만 할 일도 아니다. 기성세대들이 자기 후손에게 할 일을 다하고 젊은이들 앞에서 죄짓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그들의 위치를 지킬 것이다. 지금도 새벽부터 자정이 되도록 대학도서관의 불빛은 꺼질 줄 모른다.
타향에 자식 보내고 걱정하는 부모님께 당신의 삶이 떳떳했다면 당신의 자식들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안부를 전해드리고 싶다.
잘못이 있다면 나 자신을 포함한 어른들의 짓이지 아이들만을 탓할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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