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대표단이 들어오던 날|연등보이자 셔터누르기 바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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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2년 16일만에 북적대표단이 다시 서울에 왔다.
73년5월11일 제6차 남북적십자회담때 서울을 다녀간 뒤 일방적으로 대화를 깨고 돌아섰던 북적의 대표단이 다시 「대화」를 위해 서울에 오던 날 연도의 시민들은 『이젠 제발 적십자의 인도주의정신에 따라 동족의 유대를 되살리는 참된 결실을 거둬달라』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 환영의 손을 흔들었다.
말끔히 단장된 통일로길은 아카시아향기가 가득했고 불탄일을 맞아 곳곳의 봉축탑·연등이 대화의 성공을 축원하는 듯 했다.
84명의 북적대표단은 상오10시10분 판문점을 출발, 11시35분 숙소인 쉐라톤 호텔에 도착할때까지 연도의 풍경을 살피는 모습들이었다.

<판문점>
○…서울에서 열릴 제8차 남북적십자본회담에 참석할 북적대표단 일행은 27일상오8시30분께 판문각에 도착, 판문각계단과 2층 베란다에서 삼삼오오 떼를 지어 남쪽지역을 바라보며 환담하거나 사진촬영.
북한측이 판문점 우리측 지역으로 넘어오기 1시간전부터 판문점 주변에는 우리측 내외신기자, 북측 보도진등 1백50여명이 몰려들었다.
북측기자들중에는 지난번 경제회담등 그동안의 남북회담에 나왔던 사람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이날 남북양측기자와 외신기자들은 분계선을 넘어 자유롭게 취재경쟁을 벌였으며 낯익은 기자들끼리는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우리측 보도진보다 먼저 도착해있던 북측보도진들은 『우리는 개성에서 1박을 하고 와 조금 빨리 도착한 것 같다』면서 『지난번 수재물자 인수때 나왔던 기자들은 안 나왔느냐』 고 물었다.
이들은 또 『그쪽도 기자가 50명이 나왔느냐. 여기에 온 기자들이 앞으로 평양에 오게 되느냐』고 묻기도 했는데 이날 북측 경비병들은 평소와는 달리 시멘트로 나지막히 만들어진 군사분계선에서 북쪽으로 10m정도 이동해서 있었다.

<입국사열>
○…북한측대표단등 일행의 입국사열은 판문점중립국감독의 회의실에서 이날 상오9시26분부터 30분까지 단 4분만에 간단히 끝났다.
이날 우리측 관계자들은 북측으로부터 미리 넘겨받은 명단과 사진을 놓고 북측일행과 대조, 통과시키는 것으로 입국절차를 대신.
북측일행은 이날 이종률단장·서성철부단장등 서열대로 입국, 절차를 밟았다. 북측일행 84명중 기자 9명, 수행원 2명등 11명은 대표단의 입국광경을 취재하기 위해 상오9시15분쯤 미리 입국절차를 밟았다.
북측기자들은 대체로 감색 또는 회색양복에 똑같은 형태의 갈색 또는 검정색가방을 어깨에 멘 차림이었다.
입국사열과정에서 북측 관계자는 『대표단 승용차 바로뒤에 기자단 버스를 가게하고 수행원버스를 맨 뒤에 가게해 달라』고 요구.
○…북측의 입국사열과정에서 서울측은 평양측으로부터 휴대용 중형가방 84개, 종이상자 37개, 기타 카메라등 장비로 추정되는 화물등 모두1백21개의 화물을 인수.
이 화물을 접수한 서울측은 대형 밴트럭2대와 마이크로버스 1대에 이를 나눠 실어 경찰선도차 2대의 호위속에 서울로 옮겨왔는데 화물수송차량에 북적요원은 탑승하지 않았다.

<북측단장에 서울소감 묻자 "종합평가 하겠다">

<호텔도착>
○…북적대표단일행은 이날상오11시35붇『숙소인 쉐라톤호텔에 도착, 여장을 풀기에 앞서 호텔17층사랑방라운지에서 우리측대표, 자문위원과 인삼차를 들며 25분간 환담.
이 자리에는 판문점으로 영접을 나가지 않았던 우리측대표 자문위원 10명이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조철화한적대표의 소개로 인사를 교환한 뒤 자유롭게 소퍼에 섞여 앉아 대화를 나눴다.
우리측 대표들은 『반갑다』『피곤하지 않느냐』고 물었으며 구면인 양측인사들끼리는 『나를 기억하겠느냐』『기억하고 말고…』 하는 등 유쾌하게 말을 주고받았다.
○…이종률북적단장은 한적의 이영덕수석대표와 나란히 앉아 내외신기자들의 질문에 시종 웃음띤 얼굴로 응답.
이단장은 입경하기전 판문점에서 의사라고 밝혔는데 전공이 무어냐는 질문에 『보건조직이 전공이며 구체적으로는 사회위생』이라고 말하고 『사람의 고통을 덜어준다는 측면에서 적십자와 의사는 가장 가깝다』고 설명.
이단장은 『해방전 서울에 와 본적이 있으며 학창시절을 보내기도 했다』고 했는데 판문점에서는 서울방문이 처음이라고 했었다.
그는 또 서울의 변화된 모습을 묻는 질문에 『과장해서 얘기하면 의도적이라 할 것이고 솔직하게 말하면 야박하다 할 것이니 종합해서 평가하겠다』고만 피력.
○…이단장은 호텔에서 대접한 인삼차를 들며 『개성의 인삼차가 유명하며 개성에서는 귀한 손님에게 「인삼닭곰」을 대접한다』고 전언.
이어 우리측 기자가 『남쪽에서는 그것을 삼계탕이라 부르며 대중화 돼있다』고 말하자 『삼계탕은 한자말이 아니냐』고 되받았다.

<첫식사>
북적대표단은 호텔에 여장을 푼 뒤 낮12시20분부터 17층에 마련된 북측 전용식당에서 완자탕을 곁들인 한정식으로 서울에서의 첫 점심을 들었다.
호텔측은 평소 뷔페식당으로 써온 이곳의 좌석을 대표단 숫자에 맞게 84석으로 조정했는데 이들이 들어서자 식당종업원들은『어서 오십시오』라고 반갑게 인사한 뒤 식기뚜껑을 일제히 열어주는 것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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