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의처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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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40대중반의 부인이 괴로운 심정을 털어 놓겠다고 법원엘 찾아왔다. 최근들어 남편의 잔소리가 심해지고 신경질이 늘어 화를 잘내기때문에 남편의 귀가시간만 되면 괜히 가슴이 뛰고 문여닫는 소리에도 깜짝 깜짝 놀라고 조그마한 일에도 겁이 덜컥난다는 얘기였다.
이 부인은 결혼생활 20년에 8남매를 두었다. 남편은 모회사 고참 경리사원으로 사내에서 모범사원으로 평가받고 술·담배도 안하는 깔끔하고 세심한 사람이다. 또 퇴근즉시 집에 돌아오는 착실한 가장이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결혼생활 20년동안 8남매를 낳았으니 결혼초기부터 1년간 아기배고 1년간 아기 기르고해서 16년간을 부인으로 하여금 잠시도 한눈팔지 못하게 온갖 정력을 아이키우는데만 쏟게한 남편의 자세다.
몇해전부터 임신과 아이키우는 데서 벗어난 이 부인이 시간의 여유를 갖고 나들이를 시작하자 남편의 간섭이 시작됐다. 『오늘은 어디를 다녀왔느냐』 『누구를 만났느냐』 『뭣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느냐』 는등 꼬치꼬치 캐묻다가 심지어는 시장다녀온 시간까지 시간을 재가면서 따지는 습성이 생겼다. 부인을 궁지에 몰아붙이고서는 대답이 신통치 못하거나 마음에들지않으면 의심을 품고 손찌검까지 하게끔 되었다.
처음에는 사랑이 지나쳐서그러려니하던 부인도 점차 이것이 의처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을 아는 주변사람들은 그를 호인이라고 평한다. 그러니 이런 사정을 주위사람에게 호소할 수도 없다. 섣불리 말하다간 오히려 자기가 부정한 여인으로 몰릴까 겁도 났다. 혼자서 당하기만하던 부인이 쇠약해지고 우울증에 빠져 병원엘 찾아오게된 것이 하소연의 자초지종이다.
남자는 일생에 몇번씩은 아내를 의심하는 경우가 있다고한다. 특히 미인아내를 둔남자는 더욱 그러하다.
의처증이 있는 남자는 대부분 성장과정에서 모친과의 불신관계를 찾아볼수 있다. 여자를 믿지못하는 불안감은 성장후 평소에는 잘 나타나지않고 자신도 모르는사이 어떤방법 (앞의 예에서의 8남매출산등)이든 그 불안을 해소 또는 감소시키면서 생활한다. 그러다가 승진이 안된다든가 은퇴를 앞둔시기, 정력이 감퇴되고 성생활이 잘 안될시기인 40대후반에 두드러지게 외부로 표출된다.
의처증의 남편은 절대로 자신을 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인은 이 사실을 숨기려하지말고 가까운 사람과 상의하는 것이 현명하다. 의처증은 정신병이다. 남편은 지금 환자이므로 주저할 필요가 없다. 의처증은 입원치료해야하는 병이어서 남편을 입원시키는 어려운 문제가 있지만 잘 안될때는 부인이 먼저 임원하여 남편을 병원으로 유도하는 방법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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