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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출산을 앞둔 후배 J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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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박혜민 기자 중앙일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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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민
메트로G팀장

“저….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너는 한참 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지. “둘째는 정말 안 낳으려고 했는데….”

임신 초기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에 휴가를 신청하며 “업무에 지장을 주게 돼서 죄송하다”고 거듭 말했지.

입덧 때문에 푸석해진 얼굴에 당혹감과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너를 보면서 15년 전 내가 생각났어.

나는 연년생을 낳았거든. 첫째 낳고 출산휴가를 마친 후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다시 둘째를 갖게 된 나는 임신 4개월이 넘어갈 때까지 부모님께도 회사에도 말을 못했어. 갓 태어난 첫째를 돌보느라 고생하는 친정 엄마에게나, 또다시 내 몫의 일을 떠안게 된 동료들에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더라고.

J야. 정말 축하해. 지금은 좀 힘들어도 조금 지나면 알게 될 거야. 얼마나 축하받아야 할 일인지 말이야.

두 아이를 키우는 건 많이 힘들 거야. 번갈아 깨서 우는 두 아이 때문에 밤잠도 제대로 못 잘 거고, 야근이나 출장도 달갑지 않을 거야. 저녁 회의가 길어지거나 회식이라도 있는 날이면 10분 단위로 시계를 보며 안절부절못하겠지. 나도 그땐 정말 그 10분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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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그래도 말이다, 하나보다 둘이, 둘보다 셋이 더 좋다고 나는 생각해. 둘째는 첫째와 전혀 다른 아이일 거야. 그래서 둘은 항상 싸울 거고, 집안은 조용한 날이 없을 거고, 엄마인 너는 바쁘고 지치겠지.

한때 나도 너무 힘들고 우울해서, 집에 들어가기조차 싫은 적이 있었어. 그때 한 선배가 그러더라. “그 보석 같은 시간을 그렇게 보내지 말라”고. 그땐 잘 몰랐는데 지금은 알 것 같아.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출산휴가 기간 동안 네 빈자리가 걱정 안 되는 건 아니야. 하지만 그건 네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란다. 그건 회사와 이 사회가 담당해야 할 몫이지.

수많은 여자 선후배들이 자녀 양육 때문에 일을 그만두는 걸 봤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육아는 여성의 사회생활에 가장 큰 장애물이더라.

출산과 육아로 인한 여성 인력의 공백을 메워줄 수 있는 시스템과 매뉴얼을 구축하지 않으면 그 장애물은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 저출산이 문제라고들 하면서도 내 사무실 여직원이 임신하는 건 진심으로 축하해 주지 못하는 이유도 그것일 거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건 이제 남녀 모두, 그리고 그가 속한 집단과 나라 전체가 진심으로 축하하고 시스템을 갖춰 물심양면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지. 너의 둘째를 잘 낳고 키우기 위해 우리 모두 도울게. 사회도 조금씩 달라지지 않겠니. 걱정하지 말고 맘 편히 건강부터 챙겨라. 축하한다.

박혜민 메트로G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