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선거구 획정에 저항한 무효표 찍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최종권 기자 중앙일보 기자
기사 이미지

최종권
사회부문 기자

전통적으로 투표율이 높았던 충북 괴산군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20대 총선에서 큰 폭으로 떨어지고 무효표 비율도 전국에서 최상위권을 기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 어느 지역보다 유권자 의식이 높았던 괴산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7일 충북도 선관위에 따르면 괴산군 유권자 3만4172명 중에서 1만7711명(51.8%)이 투표했다. 전국 평균 투표율(58%)보다 6.2%포인트 낮고 충북 11개 시·군 중 가장 낮은 투표율이다. 20대 총선 전국 평균 투표율은 3%포인트가량 높아졌는데 괴산군은 19대(60.4%)보다 무려 8.6%포인트나 떨어졌다.

특히 괴산군의 무효표 비율은 3.96%로 전국 평균(1.53%)보다 2.4%포인트나 높았다. 19대 총선(2%)보다 배로 뛰었다. 서울 은평갑(9.97%) 등 5개 도시 선거구를 제외한 농어촌 선거구 중에서 괴산군의 무효표 비율이 가장 높았다.

선관위에 따르면 무효표 대부분은 투표용지에 기표를 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번 총선에 비례대표 후보를 낸 19개 정당 모두에 기표한 경우도 있었다.

기사 이미지

충북 괴산군민들이 3일 전통시장을 돌면서 투표 거부 운동을 하고 있다. [사진 괴산군총선투표반대위]

유달리 이번에 무효표를 많이 찍은 이유가 뭘까. 현지 주민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주민 생활권과 농어촌 특수성을 반영하지 않은 일방적 선거구 획정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19대 때 괴산은 생활권이 같은 진천·음성·증평군과 같은 선거구였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인구 비율에 맞춘다는 이유로 생활 문화권이 다른 소백산맥 남쪽의 보은·옥천·영동군(충북 남부 3군)에 괴산군을 편입시켰다. 지난 2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선거구 획정안에 따른 결과다.

당시 괴산군민들은 “직통 버스가 한 대도 다니지 않는 동네와 선거구를 합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반발했다. 투표 보이콧 운동을 주도한 이상호 괴산군 총선투표반대위원회 위원장은 “졸속 처리한 선거구 획정에 따른 피해를 국민이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지 정치권에 되묻고 싶었다”고 말했다. 국회가 국민의 참정권을 포기하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결국 괴산군의 사상 최악의 무효표 비율과 폭락한 투표율은 생활권을 무시한 선거구 획정에 대해 유권자들이 무효표 찍기로 저항한 결과란 얘기다.

배재대 김욱(정치학) 교수는 “현행 선거제도에서 인구가 적은 농어촌 지역의 대표성이 불리하다”며 “선거구획정위원회 구성 단계에서 정치권의 입김을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헌법이 규정한 표의 등가성을 맞추기 위해 중·대선거구제나 권역별 비례대표 도입을 고민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최종권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