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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행복한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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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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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창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우리 조선산업이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 구조조정은 많은 사람을 어렵고 힘들게 한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구조조정은 없을까? 일본의 유명한 만화가 다카하시 신이 쓴 작품 중 『좋은 사람』이 있다. 이 만화에는 1990년대 장기불황으로 구조조정을 하는 기업이 나온다. 좋은 사람인 주인공은 모두가 행복한 구조조정을 하려고 한다. 그래서 구조조정 대상자가 주도해 방안을 만들도록 한다. 그들은 사명감을 갖고 자신과 동료의 구조조정 안을 만들고 시행한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시황 악화와 손실 누적으로 조선산업의 규모를 계속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선산업은 다른 산업보다 변화가 크다. 조선 수주량은 매년 수십%씩 바뀐다. 적절히 수주잔량을 보유하고 생산을 조정해 그 변화를 관리한다. 하지만 지금은 통제 관리 가능한 수준을 넘어 설비와 인력이 남아도는 상황이다. 2015년 세계 건조량은 고점 대비 30%나 감소했다. 앞으로 몇 년간은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다면 모두가 이해할 만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조조정 당사자가 조정의 주체가 되면 좋을 것이다. 대표적인 당사자는 국책 금융기관과 조선업계에서 일하는 사람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국책 금융기관의 조선산업 지원은 커지고, 조선 인력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들이 조선산업의 구조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리적인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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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모든 당사자가 동등한 입장에서 토론할 수 있는 협의체가 필요하다. 다른 산업도 그렇지만 조선산업 구조조정은 매우 복잡하다. 국책 금융기관과 조선업계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선산업은 규모가 크고 많은 인력을 고용한다. 그래서 은행,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정치권까지 다수의 이해관계자가 얽혀 있다. 여러 당사자가 협의를 해야 한다. 이럴 때는 공정한 기준이 있어야 하고, 합의를 위해 서로 양보해야 한다.

협의체는 우선 희망이 있는 조선산업의 미래를 그려야 한다. ‘말뫼의 눈물’로 우리에게 알려진 스웨덴 코쿰스 조선소는 1980년대 불황 이후 사라졌다. 말뫼는 더 이상 조선 도시가 아니다. 친환경 도시로 바뀌고 있다. 조선소 자리에는 건물이 세워졌다. 친환경 도시 말뫼의 랜드마크인 ‘터닝 토르소’다. 반면 일본은 적정 규모를 유지하는 구조조정을 했다. 결과적으로 현재 조선업의 부흥을 이끌었다. 또한 사업다각화를 통해 다른 분야의 경쟁력도 높였다.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조선산업 구조조정은 새로운 산업으로 변신이 아닌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이 돼야 한다. 게다가 앞으로는 사물인터넷·인공지능으로 최고 기술력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미래는 첨단기술에서 앞서가고 1등을 유지할 수 있는 규모를 가져야 한다.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할 수 없지만 조선산업은 서서히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선박의 환경 규정이 강화돼 새로운 수요가 기대 되기 때문이다. 먼 미래를 생각한다면 모든 설비와 인력을 유지해야겠지만 가능하지 않다면 얼마나 줄여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이해관계자가 공감할 수 있는 시장 예측을 기반으로, 앞으로 유지 가능한 최대 설비와 인력을 타협해야 한다. 그리고 유지할 수 없는 부분을 어디서 해소할지 고민해야 한다. 

첨단기술 개발에는 조선사 간 협력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조선사들은 중국이나 일본과 다르게 내수가 부족하다. 해외의 동일한 고객을 두고 서로 경쟁한다. 심지어 우리나라 조선사만이 대응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서도 서로 가격경쟁을 한다. 결과적으로 해양플랜트에서 모두 치명적인 상처만 입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 육군은 해군과 사이가 나빴다. 자원 부족으로 허덕이고 있었지만 육군은 자신들만의 잠수함과 항공모함을 별도로 개발했다. 어리석은 일이라고 웃고 넘길 수만은 없다. 우리 조선사는 신기술을 각자 개발해왔다. 여유가 있다면 경쟁력을 높이는 방법이겠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덴마크 코펜하겐은 스마트시티의 모범 사례다. 이곳에서는 프로젝트 참여 기업이 밸류체인별로 모두 다르다. 전문성을 키우고 협력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비슷한 업체가 많으면 경쟁하지만 서로 다르면 협력할 수 있다. 주요 기술별로 조선사가 보유한 부분을 분할해 합작사를 설립하는 것도 방법이다. 합작사에서 기술을 개발하고 모든 조선사는 그 기술을 사용하면 된다. 부족한 자원에서 효율을 높이기 위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향후 몇 년간의 구조조정이 우리 조선산업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대규모 산업이나 장치산업의 구조조정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높다. 그래서 조선산업의 구조조정은 매우 중요하다. 다만 구조조정 과정에서 모두가 이해할 수 있고 희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모두가 행복한 구조조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은창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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