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백은 증거" 시대 종지부|대법원, 고숙정씨 무죄확정판정의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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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고숙정피고인에 대한 무죄확정은 「자백은 증거의 왕」이던 시대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구속전 피의자의 장기구금, 고문등 가혹행위가 쟁점이었고 하영웅형사의 예금증서절취까지 겹쳐 세상을 떠들썩하게했던 이사건은 결국 합법적 수사절차를 강조한 법원의 인권선언적인 판결로 발생 3년6개월만에 범인을 찾지 못한채 마무리됐다.
대법원도 검사앞에서의 자백을 증거로 인정하던 판례를 깨고 열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명의 억울한 피의자를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법정신에 충실해 엄격한 물적증거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검찰은 상고이유에서▶고피고인의 검찰에서의 자백내용만으로 판단해야함에도 증거능력없는 경찰자백을 포함시켰고▶피고인자백의 범행동기는 살인동기로서 충분하며▶범행경로·범행에 사용한 장갑·범행장면등에 대해서 심리미진이나 사실오인등의 잘못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에대해『원심이 경찰자백을 증거로 하는데 동의하지 않고 그진술의 임의성여부까지도 판단한 것은 법원의 재량이며 실체진실발견을 위해 취한입의성에대한 판단도 타당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또 고피고인의 결혼이 죽은 윤노파에의해 정략적으로 이루어졌고, 그후결혼생활과 경제생활의 불만 때문에 범행했다는 자백동기에대해 『그 이유만으로 3명을 죽였다고 보기엔 범죄동기가 부족하다』고 본 원심을 지지했다.
이처럼 이사건은 대법원도 고피고인의 경찰·검찰에서의 자백에「임의성은 있으나 신빙성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동안 하형사사건으로 많은 경찰간부가 희생됐고 고피고인의 담당 부장검사가 법복을 벗는등 외형적인 상처도 많았지만 이사건이 경찰·검찰등 수사기관에 미친 영향은「인권수사」라는 측면에서 신선한 자극제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두달 간격으로 발생한 윤노파피살사건과 여대생 박상은양 피살사건등 대형강력사건이 모두 「수사기관은 범인을 잡았으나 법원이 인정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강력범인은 반드시 잡힌다.」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지 못한채 모두 영구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많아졌다.
고피고인은 이번대법원의 무죄확정판결로 구속된 81년8월17일부터 보석으로 풀려난 82년 6월17일까지 구속기간 3백5일에대해 형사보상법에따른 1백52만 5천원(하루5천원)의 보상금을 지급받게 된다.
그러나 고피고인은 지난해 8월 서울민사지법에 국가를 상대로 자신이 근무하던 D보험회사 외무사원을 면직당해 잃게된 수입과 가족들이 받은 정신적 고통등 모두 3천6백만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었다.
민사소송에서 고피고인이 승소할 경우 범에 따라 형사보상금은 지급 받을 수 없게 된다. <신성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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