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프전 MVP 시몬 "형제같은 동료들과의 이별, 가슴 아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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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3. 1점을 남긴 순간 OK저축은행 세터 곽명우(25)의 토스는 시몬(29·쿠바)의 머리 위로 향했다. 시몬은 높이 솟구쳐 올라 현대캐피탈 코트에 강스파이크를 꽂았다. V-리그에서 날린 마지막 스파이크가 우승을 이끌었다. 축포가 터지는 순간 김세진(42) 감독은 그를 와락 껴 안았다. OK저축은행 선수들은 김 감독과 시몬을 얼싸안고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OK저축은행은 24일 안산 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V-리그 챔피언결정전(5전3승제) 4차전에서 현대캐피탈을 세트스코어 3-1(25-20 25-15 19-25 25-23)로 완파하고 3승 1패를 기록, 2년 연속 정상에 올랐다. 승부처였던 4세트에서 12점을 올린 것을 비롯해 32점을 기록한 시몬은 챔프전 최우수 선수(MVP)에 선정됐다.

2014년 OK저축은행에 입단한 시몬은 지난 2년간 V-리그를 평정했다. 지난 시즌 삼성화재의 8연패(連覇)를 저지했고, 올시즌에도 여전한 활약을 펼쳤다. OK저축은행은 올 시즌 시즌 5라운드 중반까지 1위를 굳건히 지켰다. 그러나 주전 세터 이민규(24)가 5라운드에서 어깨 부상을 당한 이후 흔들렸다. 후반기 들어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온 현대캐피탈에 정규시즌 1위 자리를 내줬다. 그러나 이탈리아리그를 포함해 국제대회 경험이 풍부한 시몬은 젊은 선수들을 다독이며 ‘코트 안의 리더’ 역할을 했다. 시몬이 중심을 잡자 OK저축은행도 힘을 냈다. 플레이오프에서 삼성화재를 가볍게 꺾고 올라온 OK저축은행은 챔프전에서 전혀 다른 팀이 됐다.

코트 안에서 괴물로 통하지만, 시몬은 코트 밖에서는 천진난만한 소년 같았다. 팬들과 함께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고, 코믹 댄스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년엔 국내 무대에서 시몬을 볼 수 없다.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공개 선발)제도가 도입돼 선수 연봉 상한이 30만 달러(약 3억7000만원)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이 정도 금액으로 월드클래스 공격수 시몬을 잡기는 어렵다.

OK저축은행은 지난 3일 정규 시즌 최종전 직후 시몬을 위해 송별회를 준비했다. 시몬은 동료들의 이별의 말이 담긴 영상을 보며 연신 눈물을 흘렸다. 함께 한 팬들도 함께 눈물을 글썽이며 아쉬워했다. OK저축은행은 시몬이 쓰던 등번호 '13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하며 예우했다. 그래서인지 우승을 확정하고도 시몬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시몬은 "슬픔과 기쁨이 교차한다. 가족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형제 같은 선수들을 두고 떠나는게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김세진 감독은 "어려울 때 시몬이 해결해 준다고 생각하고 강서브로 밀어 붙인 게 통했다"며 "너무 고마웠다. 마지막이란 생각에 경기가 끝나자마자 시몬을 안아줬다"고 말했다. 시몬은 "김세진 감독은 당근과 채찍이 필요한 때를 적절하게 조율하면서 팀을 하나로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시몬은 OK저축은행에 있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지난 시즌 우승을 떠올렸다. 시몬은 "오늘 우승도 대단히 기쁘지만 지난 시즌에는 우승 후보로 꼽히지 못한 상태에서 우승을 해 뜻깊었다"고 돌아봤다.

이어 그는 "동료들은 저에게 세계 최고라고 말해줬지만, 모든 스포츠는 팀이 하나가 돼야 이길 수 있다. 투지와 열정이 넘치는 선수들과 같이 해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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