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경계가 어떻습니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68호 34면

남편은 자신의 뒤통수가 찍힌 사진을 보고 경악했다. 그 사진은 아내가 아들을 찍은 것인데 등을 맞대고 앉아있던 남편도 덩달아 찍힌 것이다. 뒤통수는 낯설었다.


가족과 동료와 친구와 지인들 가운데 남편의 뒤통수를 남편 자신보다 적게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길에서 지나치는 행인들조차 남편의 뒤통수를 남편보다는 더 볼 확률이 높다. 자신의 뒤통수를 가장 적게 보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정황상 자신의 뒤통수가 분명했지만 남편은 도무지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내에게 물었다. 이게 정말 내 뒤통수야? 완전 할아버지잖아. 내 뒤통수가 이렇게 생겼나?


남편은 30대 후반부터 탈모가 진행되어 50대 초반인 지금은 ‘탈모인’으로서 확고한 외양을 갖추었다. 생물학적 나이보다 열 살은 더 들어 보인다. 늙어 보이는 것은 상관없지만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처지라 아무래도 신경 쓰인다. 나이가 많아서 안정감이 있다든지 경험이 풍부할 것 같다든지 하는 인상은 정보혁명 시대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변화에 둔감하고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옛날 방식과 자신의 경험에만 갇혀 있는 고집 센 구시대적 인물일 거란 인상만 준다.


탈모의 앞모습은 아침 저녁으로 거울을 통해 자주 접하다 보니 어느새 설득되고 말았지만 새삼 확인하게 된 뒷모습은 충격이었다. 정수리를 중심으로 마치 원을 그린 듯 머리통의 절반 정도 되는 부분에 머리카락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탈모가 된 부분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탈모가 아직 안 된,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직 덜 된, 상대적으로 숱이 많고 색도 짙은 머리통의 옆과 아랫부분이다. 아니다. 경계가 문제다. 탈모가 된 부분과 탈모가 되지 않은 부분이 만나는 지점에 뚜렷하게 생긴 경계가 문제다.


남편은 일본에 살 때 자전거를 타고 책방에 가다가 경계에 서본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한쪽은 햇살이 비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비가 내리는 지점을 통과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남편은 자전거를 세우고 그 경계에 한참 서 있었다. 몸의 절반은 햇살 속에 동시에 다른 절반은 비를 맞으며 말이다. 사람들에게 그 경험을 이야기하면 다들 남편에게 물었다. 경계가 어땠습니까?


경계는 대비를 강화한다. 남아있는 옆머리와 아랫머리의 짙은 숱이 탈모의 현장을 더욱 황량하고 참혹하게 만든다. 차라리 머리 숱의 경계를 없애면 어떨까? 훨씬 단정하게 보이지 않을까. 젊어 보이지 않을까. 적어도 개성 있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남편은 경계를 없애기로 결심했다. 단골 미장원의 실장은 반대한다. 대부분 실장은 고집이 세다. 남편이 사정을 말해도 실장은 고집을 꺾지 않는다. 저도 말씀대로 해드리고 싶어요. 그렇지만 손님에게는 그 머리가 어울리지 않습니다. 제게도 헤어 디자이너로서 직업적 양심이라는 게 있잖아요. 경계를 없애라고 하면 삭발을 하자는 건데 그건 얼굴이 작고 둥글고 뒤통수가 예쁜 사람들에게나 잘 어울리는 머리라니까요.


헤어 디자이너는 차마 말하지 않았지만 남편은 그가 무슨 말을 삼켰는지 알 것 같았다. 남편처럼 크고 각진 얼굴과 납작한 뒤통수의 머리통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남편도 고집이 세다. 경계를 없애주세요. 옆머리와 아랫머리를 아주 짧게 잘라주세요. 어떻게 되든 제 머리통이니까요. 자신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어요. 자신보다 자신의 운명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없어요. 남편은 크고 각진 얼굴로 말했다. 그러니까 삭발해주세요. 실장은 한숨을 쉬었다. 손님에겐 정말 안 어울릴 텐데….


머리를 다 자른 후 감은 눈을 뜨자마자 남편은 알았다. 망했다. 역시 너무 짧았다. 크고 울퉁불퉁 각이 진 남편의 머리에 삭발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험악했다. 남편은 자신의 얼굴이 무서웠다. 거울을 가져와 남편의 뒤통수를 보여주며 헤어 디자이너가 물었다. 경계가 어떻습니까?


다음날 아침 출근 전에 남편은 평소보다 오래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사람들이 다들 한마디씩 할 텐데. 걱정하는 남편을 아내가 위로했다. 괜찮은데. 뭐 금세 자라겠지. 야한 생각을 계속 해봐요.


그날 저녁 남편은 우울한 얼굴로 귀가했다. 아내가 물었다. 왜 사람들이 다들 뭐라고 해? 조폭 같다고 해? 아니. 그럼 왜 그래요? 몰라. 아무도 몰라. 내가 머리를 깎은 사실조차 아무도 몰라. ●


김상득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에 근무하며, 일상의 소소한 웃음과 느낌이 있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아내를 탐하다』『슈슈』를 썼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