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고용·산재보험 기금은 주식 투자하면 안 되는 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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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용노동부가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기금의 주식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말 각각 8조5000억원, 11조9000억원인 고용·산재 보험 적립금의 일부를 국민연금처럼 주식에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이런 내용의 ‘책임투자 가이드라인’ 용역 보고서를 제출받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수익성을 높이고 두 기금의 사회적 역할을 확대한다는 게 명분이다.

 두 가지 문제가 있다.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은 둘 다 필요한 만큼 거둬 쓰는 단기 사회보험이다. 언뜻 기금이 많아 보여도 급할 때를 대비한 비상금이다. 거둔 돈 대부분이 그해 보험금으로 거의 소진된다. 가입 후 수십 년은 내기만 하고, 나중에 수익을 얹어 돌려받는 국민연금과는 성격이 아예 다르다. 더구나 경기에 따라 지출액과 적립액이 크게 달라진다. 경기가 갑자기 나빠지기라도 하면 보험금으로 내줘야 하는 금액이 급증해 고갈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주식에 묶여 보험금을 내주지 못하면 실업자나 출산 여성, 육아 휴직자, 산재를 입은 근로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안 그래도 고용보험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적립금이 급속히 줄어드는 위기를 맞았다. 지금 쌓여 있는 돈도 법정 적립배율(1.5~2배)의 절반 이하인 0.7배에 불과하다. 주식에 투자할 성격의 돈이 아닌 데다 수익을 낼 만큼 장기로 운용할 여건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주식투자를 늘리는 건 사회안전망을 위협하는 일이다.

 책임투자라는 명목으로 투자할 기업의 범위를 정하고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도록 한 것도 오해받을 소지가 크다. 보고서는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목적사업과 기금 운용을 연계시킬 수 있다’고 적시했다. 비정규직 고용환경 개선, 시간제 일자리 확충, 지배구조 개선 등 정부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기업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쓰일 수 있는 셈이다. ‘관치 경영’이나 ‘연금사회주의’라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 취지에 어긋나고 부작용만 우려되는 두 기금의 주식투자 계획은 접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