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말 4회 반복…망가진 ‘로봇 루비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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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코 루비오 상원의원

지난주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3위를 하며 공화당 대선전의 유력주자로 급부상했던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44·플로리다주)이 지난 9일(현지시간) 뉴햄프셔 경선에선 나락으로 떨어졌다.

뉴햄프셔 5위, TV토론 실수 탓 커
실망한 지지자들 항의성 e메일
언론도 “중압감에 오작동” 비꼬아

뉴욕타임스(NYT)는 10일 ‘토론회의 실수가 어떻게 마코 루비오를 뉴햄프셔에서 추락시켰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를 분석했다.

 루비오의 악몽은 ABC방송 주관으로 열린 공화당 대선 후보 8차 TV토론에서 벌어졌다. 공화당 후보들은 초선 의원이자 이번 미 대선의 최연소 주자인 루비오가 경험이 부족한 게 문제라고 공격했다.

루비오도 즉각 응수에 나섰다. 문제는 루비오가 같은 말을 4차례나 반복했다는 점이다. 루비오는 경쟁자들이 그를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빗대 설익은 정치인이라고 공격하자 “오바마는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라는 말을 연이어 반복했다.

이에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는 “달달 외운 25초짜리 연설문이네”라며 일침을 가했다.

 토론회 후 루비오 선거캠프에는 지지자들의 항의성 e메일이 쇄도했다고 NYT는 보도했다. ‘왜 같은 말을 반복하나’, ‘왜 크리스티와 맞서 싸우지 않고 당하기만 했나’, ‘왜 이렇게 땀을 많이 흘리나’ 같은 내용이었다.

당시 TV에 비친 루비오의 모습이 컴퓨터나 로봇같이 보였다고 해서 ‘로봇 루비오(Robot Rubio)’ ‘루비오 컴퓨터 운영체계(RubiOS)’라는 조롱까지 등장했다.

그는 지난 8일 뉴햄프셔 남부 내슈아에서도 연설 중에 ‘그들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가치’라는 구절을 몇 번씩 되풀이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언론들은 공격을 받아 중압감을 못 이긴 루비오가 ‘오작동’을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루비오는 뉴햄프셔에서 5위로 추락했다.

 2008년 미 대선후보였던 존 매케인 캠프에서 고문을 맡았던 니콜 월리스는 “사건 직후에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던 게 루비오의 두 번째 실수”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루비오는 토론 직후에는 “언론이 내 실수에 집착하지만 않았어도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 하다가 10일 기자들에게 “내 잘못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8번의 토론 중 7.95번은 잘 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월리스는 “유권자들은 정치인이 실수를 인정하려 들지 않을 때 더 가혹하게 정치인을 처벌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연설이나 토론의 달인들은 종종 강조하는 기법을 쓰지만 루비오처럼 ‘자동 반복’되는 강조는 아니라고 설명했다.

월리스는 “보수주의자들은 기개가 있는 대선 주자를 원한다”면서 “루비오는 유권자들의 신뢰를 잃었고, 유권자들의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루비오는 대선 레이스를 계속할 생각이다. 루비오는 20일 경선이 열리는 사우스캐롤라이나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기자단에게 마지막까지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한 때 후보가 17명까지 난립했던 미 공화당 경선은 득표율이 부진한 일부 군소 후보들이 백기를 들면서 정리되는 모양새다.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는 뉴햄프셔 경선에서 6위를 한 뒤 경선 중단을 선언했다.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패커드(HP) 최고경영자(CEO)도 경선에서 이탈하기로 했다. 이로써 공화당 후보는 6명으로 압축됐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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