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수사 검사, 지금은 대형 법무법인서 일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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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삼례의 세 청년이 17년간 ‘살해범’ 누명을 쓴 일은 검경의 합작품이었다.

이종찬 전 민정수석이 당시 지검장
제보 무시한 경찰 “최선 다한 수사”

사건 발생 두 달 후인 1999년 4월 전북 완주경찰서에 걸려온 진범 제보 전화를 ‘정신이상자의 헛소리’로 여긴 B형사는 여전히 전북 지역에서 경찰로 일하고 있다. B형사는 4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증거에 따라 수사했고, 최선을 다한 수사였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7개월 뒤인 99년 11월 부산지검은 진범 ‘부산 3인조’를 체포했다. 그중 한 명이었던 이모(48)씨는 그때 자백을 했다. 당시 부산지검 강력부 수사관이었던 C씨는 4일 “이씨의 진술과 전주지검의 사건기록, 법원 판결문을 비교해 보니 모두 일치했다. 이에 따라 담당 최모 검사도 내사를 시작했다”고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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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부산지검에서 사건을 맡았던 최 검사는 한 지방검찰청의 검사장이 됐고, 수사관 C씨는 법무사로 일하고 있다.

최 검사장은 전화 통화에서 “특별히 언급할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C씨는 “최 검사는 열정적으로 수사했지만 관할이 바뀌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억울한 옥살이를 한 3명이 재심에서 무죄를 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진실 찾기는 전주지검이 이 사건을 ‘혐의 없음’으로 종결하면서 막혔다. 자백한 이씨가 진술을 번복했다는 것이 처분의 주요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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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 3인조’의 재심 신청을 맡은 박준영 변호사에 따르면 이씨는 “당시 전주지검에서도 자백했지만 검찰의 추궁이 이어지지 않았고 소환됐다가 조사도 안 받고 구치소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됐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공범의 지인이 ‘범행을 부인하는 게 어떻겠냐’고 해 따랐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당시 전주지검에서 수사를 맡았던 또 다른 최모 검사는 이 사건 1년여 뒤 검찰을 떠나 한 대형 법무법인에서 일하고 있다. 본지는 그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고 문자메시지를 남겨놓았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사건 발생 당시 전주지검장은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었다. 그는 진범인 ‘부산 3인조’가 체포됐을 때는 부산지검장이었다. 현재는 한 법무법인의 대표로 있다. 박 변호사는 “지금이라도 수사를 맡았던 경찰관과 검사, 오판했던 판사가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 부산=차상은 기자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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