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1등의 책상] "문제 적게 풀지만 다양한 풀이법을 고민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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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문고 전교 1등 이철민군은 갖고 있는 문제집이 거의 없다. 많은 양의 문제를 풀이하는 대신, 한 문제를 30분 이상 고민하며 다양한 해법을 찾는 방식으로 공부한다. 이군은 “건성으로 여러 문제를 훑는 것보다 하나라도 완벽하게 숙지하는 게 진짜 내 실력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상문고 2학년 이철민군

책상 한켠에 문제집 서너 권과 노트가 놓여 있다. 상문고(서울 서초구) 2학년 전교 1등 이철민군의 책상이다. 이군은 “친구들 중에 제가 갖고 있는 문제집이 가장 적을 거예요. 그나마 그것도 일부만 풀었어요”라고 말했다.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라는 수학도 수능 기출문제집과 학원 교재를 제외하면 직접 구매한 교재는 두 권뿐이다. 국어와 영어는 모의고사 시험지와 학원 교재가 전부다. 전 과목 문제집과 노트를 다 가방에 챙겨 넣고 등하교를 해도 가뿐할 정도다. 남보다 적은 문제집을, 심지어 다 풀지도 않으면서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비결이 뭘까. 이군의 책상에서 적은 공부 분량으로 높은 성적을 받는 효율적인 공부 비결을 찾아봤다.

무작정 많이 풀기보다 약점 보완 중시
내 풀이과정과 학교·학원 풀이법 비교
단조로운 생활 패턴 유지하려 노력

매일 국어는 1시간30분 정도, 수학은 2시간, 영어는 2시간 남짓 공부하고 있어요. 그런데 몇 시에 어느 정도 분량을 공부하겠다고 정해 놓진 않았어요. 그때그때 하고 싶은 과목을, 하고 싶은 시간 동안 공부하는 거죠.”

이군은 학습 계획을 철저하게 짜고 이를 반드시 지키는 스타일은 아니다. 자습을 시작할 때 전날 공부했던 내용을 떠올려보고, 오늘 해야 할 과목이 뭔지 정하는 정도다. 휴식 시간도 정해놓지 않고 지친다 싶으면 책을 덮는다. 이군은 1등을 놓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공부의 절대적인 분량은 많은 편이 아니지만, 나에게 부족한 부분은 빼놓지 않고 채워가기 때문인 것 같다”는 답을 내놨다.

이군의 공부 방법은 노트에 담겨 있다. 그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의 설명 내용을 두서없이 전부 받아 적은 뒤 자습 시간엔 이해할 수 있게 노트에 정리한다”고 말했다. 노트 정리는 단순히 보기 좋게 옮겨 적는 게 아니다.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생략하고, 어려운 내용은 한참을 곱씹은 뒤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바꿔 쓴다. “일종의 나만의 해설서”라고 말했다.

자주 실수하는 문제 유형, 공책에 정리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인 영어의 경우, 수업 시간에 이해가 잘 안 된 구문을 통째로 옮겨 적는다. “나의 해석과 선생님의 해석을 나란히 써보고, 왜 이런 차이가 생겼는지 나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적어가며 반복적인 실수 유형을 찾아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방식으로 노트 정리를 하면서 찾아낸 실수를 보완해 점수를 올려나가는 거다. 이군은 “노트 정리를 하다 보니, 영어는 어법을 정확하게 모른 채 단어 몇 개의 의미만으로 문장 전체의 의미를 끼워 맞춰 해석하는 습관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단어를 외울 때도 예문까지 숙지해 문장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자세히 살피며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어 역시 마찬가지다. 반복적으로 틀리는 부분을 옮겨 적고 해설서의 내용과 자신의 생각에서 차이점이 무엇인지 노트에 설명을 달아놓는다. 이군은 “지문이 길고 생소한 내용이어도 ‘사실적 이해’를 묻는 문제는 거의 맞추는 반면, 문학 지문에서 ‘유추’를 통해 풀어야 하는 문제는 자주 틀리는 편”이라고 말했다. 어떤 문제에서, 왜 틀렸는지를 계속 정리하다 보니 자신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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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습을 할 때는 늘 맞추는 부분은 넘어가고, 자주 틀리는 내용에서 4~5문제씩 꼼꼼하게 곱씹어 본다. 이군은 “문제를 여러 개 푸는 것보다 한 문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궁리하며 푸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

탐구하듯 공부하는 이군의 성향에 가장 잘 맞는 과목은 수학이다. 매일 2시간 정도 수학을 자습하는데, 푸는 문제 수는 30문제가 채 안 된다. 이군은 “30분 동안 한 문제만 붙잡고 있을 때도 있다”며 “답을 구하지 못해서 고민하는 게 아니라, 같은 문제라도 함수를 이용해서 푸는 방법도 있고 도형을 이용해 답을 찾을 수도 있기 때문에 풀이 방식을 어디까지 응용할 수 있는지 깊게 생각해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의 풀이 방식과 학교 선생님과 학원 선생님의 풀이법, 해설지의 내용을 전부 비교해보고 ‘나는 왜 다른 풀이법을 떠올리지 못했을까’에 대해서도 고민해본다”는 것이다.

문제를 적게 푸는 대신 한 문제를 풀더라도 풀이 과정을 생략하지 않고 세세하게 풀어 쓰는 편이다. “무의식적으로 당연하게 넘어가는 부분이 없게 하기 위해서”다. 이군은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계속 생각을 한다”며 “하나하나 고민하고 분석하면서 문제를 풀어야 공부가 내 안에 실력으로 쌓이는 느낌”이라고 얘기했다.

친구들이 모르는 문제를 들고 와 질문을 할 때도 원리를 중심으로 설명해준다. “제가 문제를 대신 풀어주면 물어본 친구에게 큰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요. 문제를 같이 읽고 ‘무엇을 물어보고 있는 걸까’ ‘이 단계에서 어떤 개념을 적용해야 할까’라면서 계속 질문해 수학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려고 하죠. 그 친구도 혼자 풀 수 있을 정도로 이해가 됐으면 좋겠어요.”

심화학습 원해 인강보다 학원 선호

이군은 인터넷강의(인강)는 듣지 않는다. 대신 학원에 다니고 있다. 국어·영어·수학은 물론 과학 과목까지 학원을 다니면 보충 학습을 한다. 이군은 “의지력이 강한 편이 아니라서 인강을 들으며 제대로 집중할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또 “옆에서 같이 공부하는 친구가 보여야 긴장도 되고 하나라도 더 배우게 되는 것 같다”고도 했다. 자신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고 학원에서 공부하는 게 더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군이 학원에 다니는 이유는 모자란 실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는 “사실 학원을 지금 당장 안 다닌다고 해도 성적을 유지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교과서 내용을 기반으로 출제되는 내신 시험이나, 최근 쉽게 출제되는 수능을 준비하는 것은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큰 어려움은 없다”는 것이다.

이군은 학원에 다니는 이유를 “심화 학습과 공부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특히 수학 학원에서는 수능 수준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를 풀고 있어요. 수학을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학교 수업만으로는 갈증이 있는 편이라 학원에서 심화 문제를 다루며 호기심을 채워나가는 거죠.”

흔히 전교 1등은 쉬는 시간이나 점심·저녁 시간 등 자투리 시간도 아껴가며 부족한 공부에 매진할 거라 생각한다. 이군은 “쉬는 시간에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스트레스도 풀리고 다음 시간에 집중도 잘 된다”고 했다. "학기 중에는 매일같이 점심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농구를 했는데, 방학에는 친구들과 운동할 시간이 없어 재미가 없다”고 얘기할 정도다.

온라인 게임은 고교 진학하며 그만둬

이군 스스로 밝힌 성적의 비결은 “단조로운 생활 패턴”이다. 그는 “공부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을 정도로 생활이 단조롭다”며 “PC방이나 노래방도 가지 않고, 집에서도 간단한 휴대전화 게임을 1시간 남짓 즐기거나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정도”라고 말했다. 대다수 남학생이 빠져있다는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 롤) 같은 게임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만뒀다.

“게임을 잘 못하기도 하고, 채팅창에서 상대방이 욕하는 게 싫어서 스스로 접었다”고 했다. SNS도 사용하지 않고, 카카오톡은 학급 전체가 이용하는 단체 채팅방에만 가입돼 있다. 스마트폰 사양이 워낙 낮아 휴대전화 게임도 블록 맞추기 같은 단순한 것만 연동된다. 이군은 “부모님께 부탁하면 좋은 스마트폰을 사주실 수도 있는데, 딱히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이 정도면 공부하는 데 방해되지 않는 수준에서 재밌게 가지고 놀기 충분한 것 같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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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간섭이 적은 것도 성적의 비결 중 하나라고 했다. “부모님은 내가 ‘수학을 더 공부하고 싶다’고 먼저 얘기하면 좋은 학원 정보를 알아봐주고 내가 선택한 곳에 다닐 수 있게 지원해주는 것 외에 공부에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군은 “만약 부모님이 내 공부 분량이 다른 친구들보다 적다며 억지로 문제집을 많이 풀게 했다거나, 한 문제를 오래도록 붙잡고 고민하는 성향을 답답하게 여겼다면 오히려 성적이 떨어졌을 것”이라며 “부모님이 세세하게 챙겨주지 않고 공부를 나에게 맡겨 둔 덕분에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군은 “공부는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서 꾸준히 실력을 쌓아가는 것”이라며 “자신에게 적합한 공부 분량과 방식을 찾는 게 관건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책상 위 교재

○국어: 2015년 6월 9월 모의고사 시험 문제(인터넷에서 다운로드 받은 것),
학원 자체 교재(프린트물)
○수학: 한석원의 알파테크닉(티치미), 23개년 수능기출문제(학원 자체 교재)
○영어: 2015년 6월 9월 모의고사 시험 문제(인터넷에서 다운로드 받은 것),
학원 자체 교재(프린트물)
○화학Ⅱ: 교과서, 학원 자체 교재
○물리Ⅰ: 교과서, 학원 자체 교재

글=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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