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허재는 농구천재? 허허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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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중앙대학교 동문들이 모이면 빠지지 않는 화제는 농구다. 허재.강동희의 활약과, 대부분 중앙대 출신들로 이뤄졌던 아마추어 기아 농구단의 연승, 올해초 프로농구 TG의 우승 등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긴 대화의 끝에 내려지는 결론은 '정봉섭(鄭奉燮.60)' 이라는 이름과 그가 만든 전설이다. 그들은 말한다.

"중앙대학교 캠퍼스에 정봉섭씨 동상을 세워 줘야 해"라고.

기아와 TG 모두 중앙대 출신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팀이다. 기아는 한기범.김유택.허재.강동희.김영만, TG는 허재.양경민.김주성.김승기 등을 앞세워 정상을 밟았다. 중앙대 출신이라는 것은 곧 '정봉섭의 제자'라는 것을 뜻한다.

정봉섭 중앙대 체육부장은 1983년부터 87년까지 대학농구 19연속 우승과 73연승 신화를 이룩하며 최근 20여년간 한국 남자농구계를 주름잡는 스타들을 키워냈다. 프로농구 2002~2003시즌 최우수 신인 김주성(TG)도 중앙대를 나왔다. 92년 제자인 강정수씨에게 감독직을 물려줬지만 지금도 훈련을 빠짐없이 지켜보는 중앙대 농구의 대부(代父)다.

감독 시절 鄭부장은 한번 일에 몰입하면 범접하기 어려운 카리스마를 느끼게 했다. 선수들이 원하는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으면 밤샘훈련도 마다하지 않았고 스스로 '소리없는 총'이라고 이름붙인 주먹을 휘두르기도 했다. 대학농구의 양강(兩强) 고려대와 연세대의 아성을 허물고 정상에 오르기 위해 악역도 마다하지 않았다.

鄭부장은 네번이나 농구협회로부터 자격정지와 제명을 당했다. 대부분 심판판정에 대한 불만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학연.지연에 돈의 힘이 코트를 지배하려 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는 참지 못했다.

그러나 鄭부장의 가장 큰 무기는 '이해와 사랑'이었다. 그는 선수와 그 가족들을 이해했다. 그랬기에 한기범씨의 부친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기 전 鄭부장에게 아들의 장래를 부탁할 수 있었다. 음주운전 혐의로 잠시 구치소 신세를 진 허재의 출소일에 몸소 달려가 위로하고 진정한 스타의 길을 가라고 호소한 사람도 鄭부장이었다.

'욱' 하는 성격을 가라앉히느라 애를 먹던 이 맹렬 승부사도 세월을 피해갈 수 없었다. 어느덧 이순(耳順). 이제 鄭부장은 대한농구협회 부회장 겸 대학농구연맹 회장을 맡아 말썽이 생길 때마다 수습에 진땀을 쏟고 있다. '코트의 악동'이라던 수제자 허재가 나이 서른 여덟에 한국농구연맹(KBL)의 모범선수상을 받은 걸 보면 무릇 사람이란 변하게 마련인가.

鄭부장의 회갑을 축하하기 위해 제자들은 30일 서울 하얏트호텔에 잔칫상을 차렸다. '조촐한 자리'로 시작됐지만 워낙 스타들이 한꺼번에 모여들다 보니 세간의 시선을 끌고 말았다. 늘 냉철하던 鄭부장의 얼굴에도 이날만은 푸근한 행복감이 뭍어났다.

그러나 만족을 모르는 鄭부장의 '냉철한 사랑'은 여전했다. 그는 매섭게 일갈했다.

"허재가 천재라고요. 글쎄, 모르겠네요. 하지만 아직도 허재를 능가할 만한 후배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건 우리 농구의 불행입니다. 허재가 아직도 천재 소리를 듣는 건 그만큼 우리 농구가 발전하지 않았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허진석 기자

*** 약력

▶1943년 서울생 ▶중앙대 체육교육과 졸업 ▶경성고.명지고 교사 겸 농구감독 ▶중앙대 감독(79~92년) ▶중앙대 체육부장(92년~현재) ▶83, 85년 유니버시아드 남자농구대표팀 감독 ▶한국대학농구연맹 회장 겸 대한농구협회 부회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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