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알베르토 몬디의 비정상의 눈

가족과 향토 와인 즐기는 이탈리아식 전통 연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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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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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토 몬디
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이탈리아 사람들의 연말은 그해 생산된 포도주의 품질에 달려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올해는 유독 행복하게 한 해를 마무리하게 됐다. 기상 상황이 질 좋은 포도 재배에 아주 적절했던 덕분에 2015년산 와인은 물량뿐 아니라 품질에서도 지난 20년래 최고가 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와인은 경제적으로도 중요하지만 문화의 근본 요소며 국민 생활의 필수품이다.

 이탈리아는 전국 어디서나 와인 생산이 가능하며, 각지의 와이너리가 개성 있는 와인을 생산한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사람들은 대개 자기 지역 와이너리에서 생산되는 와인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동네마다 전통의 양조장이 있는 독일 사람들이 자기 마을의 맥주가 세계에서 가장 맛있다고 하듯이 말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와이너리를 방문해 30L나 50L짜리 대형 유리병에 와인을 채워왔던 기억이 난다. 어른들은 집에서 식사할 때마다 사온 와인을 작은 유리병에 조금씩 옮겨 담아 마셨다. 와인병 몇 개를 채워 선물용으로 선반에 보관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남자들은 대부분 만 16~17세부터 집에서 식사할 때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조금씩 따라주는 와인을 맛본다. 그런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와인의 기본 지식을 갖추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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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18세 때 아버지로부터 『술을 잘 알고 제대로 마시는 자가 진정한 술 애호가이다(Optimus Potor ossia il vero bevitore)』라는 책을 선물받았다. 와인을 비롯한 여러 가지 술에 대한 지식과 마시는 방법, 대하는 자세 등이 담겨 있었다. 이 책을 통해 남과 술을 나눠 마시는 매력을 배웠고, 책임 있고 건강을 해치지 않게 절제하는 요령도 익혔다.

 이탈리아 와인이 ‘국민의 술’이 된 데는 환경 요인도 있었지만 각 와이너리나 와인 전문기관에서 많은 인력을 양성하고 연구하는 등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이다. 각 가정에서도 어떻게 하면 지역 전통주인 와인을 좀 더 잘 즐길 수 있는지 식탁에서부터 교육하고 있다.

 요즘 한국 각 지역의 전통주나 막걸리 등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단순히 마시고 즐기는 것에서 벗어나 전통을 계승하고 현대적으로 발전시키려면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취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게 아니란 사실이다. 사람이 어울리는 자리를 흥겹게 하기 위해 함께 즐길 뿐이다. 이를 가정에서부터 교육하면 어떨까 싶다.

알베르토 몬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