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탄 부르는 포퓰리즘 막는 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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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8호 30면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의 결과는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애초부터 지속가능성이 의문시되던 망상적 정책의 종말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최근 남미의 아르헨티나와 베네수엘라에서 포퓰리스트 정권은 마침내 국민의 심판을 받고 말았다.


'키르치네리스모(Kirchnerismo·키르치네르주의)’ 또는 ‘페로니스모(Peronismo·페론주의)’라 불리는 아르헨티나 좌파 포퓰리즘은 지난달 22일 치러진 대선에서 치명타를 입었다. 친기업 성향의 자유시장주의자인 비(非)페로니스트 후보 마우리시오 마크리는 지난 12년에 걸친 네스토르 키르치네르와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키르치네르 부부 대통령의 국가사회주의에 종지부를 찍었다.


키르치네르 부부의 강력한 포퓰리즘은 아르헨티나의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고야 말았다. 통화와 무역 통제, 무분별한 사회복지 지출 확대로 경제성장은 멈추고 외환보유고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인플레는 25%에 달하고 예산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6%에 달했다. 각종 헌법기구와 기관들을 입맛대로 길들이고 경제 관련 통계를 임의로 조작했다. 적자를 보전하려 중앙은행으로 하여금 페소화를 마구 찍어내게 했다.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고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했다.이런 상황에서 아르헨티나 유권자들이 페로니스트에게 등을 돌린 것은 어찌보면 너무나 자명한 이치였을지도 모른다.


‘차비스모(Chavismo)’ 혹은 ‘볼리바르 혁명’이라 불리는 베네수엘라의 포퓰리즘도 지난 6일 총선 패배와 함께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다. 1999년 집권한 우고 차베스의 자리를 물려받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의회 권력을 16년만에 반(反)차비스모 야권연대에 넘겨줬다.


베네수엘라의 차비스모를 그동안 용케 버텨온 힘은 고유가라는 ‘횡재’였다. 그러나 유가가 배럴당 30달러대로 급락한 지금 포퓰리즘의 모순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21세기 사회주의’를 주창한 차비스타들이 과도한 사회복지와 보조금 지급에 쏟아 부을 오일머니가 말라버린 것이다. 가격과 생산 통제도, 환율 조작도 불가능하게 됐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생필품 부족난이 극에 달하고 300%에 가까운 살인 인플레에 시달리며 국민은 하루하루 버티기도 힘들 정도다. 차베스처럼 고유가의 과실을 향유하지 못한 '불운한' 마두로 정권으로서는 더 이상 퍼주기할 여력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성난 민심은 차베스 포퓰리즘과 억압적 독재정권을 가차없이 심판해 버렸다.


남미의 극좌 포퓰리즘 퇴조와는 다르게 유럽과 미국에서는 오히려 극우 포퓰리즘이 판을 치고 있다. 비록 프랑스의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이 최근 지방선거 결선투표에서 중도 좌우의 합작에 밀려 일시적으로 패배하긴 했지만 1차투표 1위라는 존재감은 여전하다. 유럽의 난민사태와 재정위기, 기승을 부리는 이슬람 테러를 발판 삼아 극우 포퓰리즘은 급격히 세를 불려나가고 있다. 반유럽주의, 민족주의 회귀, 반 이민, 외국인 배척, 반 이슬람, 유로화 탈퇴라는 반 통합 이데올로기의 만연은 2차대전 이전의 혼란스런 유럽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을 주고 있다. 극단주의 나치즘·파시즘이 지배했던 시절처럼 가공할만한 공포의 시대가 21세기에 새로 열릴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미국 공화당의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는 반이슬람을 공공연히 내세우며 극우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포퓰리즘의 유혹에서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풀 꺾이긴 했지만 여전히 좌우, 보수와 진보 진영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중도가 설 자리는 점점 비좁아지고 있다. 더구나 4개월 후엔 총선이 예정돼 있다. 빈부격차가 커지고 사회가 불안정해질수록 극단주의 이념이 기승을 부리는 것을 우리는 역사와 현실을 통해 목도해 왔다. 극단의 포퓰리즘은 결국 나라를 파탄으로 몰고갈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은 온건한 중도의 외연을 넓혀가야 할 것이다.


한경환


외교·안보 에디터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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