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녀 죽음 부른 사이버 상업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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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인터넷 유료 콘텐츠 이용료가 많이 나와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은 열한살의 소녀가 자살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한 가정의 불행으로만 넘길 수 없다. '인터넷 왕국'이라는 허명에 들떠 유료 콘텐츠 사업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소홀히 한 사회의 잘못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터넷 인구가 2천6백만명을 넘을 만큼 가상세계는 우리네 삶과 뗄 수 없을 만큼 일상화된 지 오래다. 자신의 생활 공간을 현실에서 가상까지 확장하는 것은 개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로 결코 비난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자아가 확립되기 전의 어린 청소년들이 영리를 앞세운 유료 콘텐츠 사업가들에게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는 데 있다. 그 피해가 이제 부메랑이 되어 우리네 가정으로 돌아오고 있다.

가상사회의 자기 분신을 의미하는 시각적 이미지의 '아바타'의 이용자 가운데 10대가 40%를 넘고, '리니지'등 온라인 게임 이용자의 주축은 10대들이다. 심지어 초등학생을 겨냥한 음란 유료 사이트들도 적지 않다.

2002년 상반기 한국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전자상거래에 의한 피해구제 신청 가운데 유료 콘텐츠 관련 피해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네배나 늘어나고 있지만 정부의 대책은 제자리 걸음이다.

만 14세 미만의 어린이들은 부모나 보호자의 동의를 받게끔 법이 규정돼 있지만 이에 대한 당국의 감시망이 너무나 느슨하다. 게다가 휴대전화나 집전화의 ARS서비스와 연계해 전화요금에 이용료를 포함하는 결제방식으로 어린이들이 너무나 쉽게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

정부는 어린이들이 유료 서비스를 이용할 때는 반드시 부모의 확인을 받도록 하는 전자인증제 의무화를 채택하고 현재의 결제방식이 적절한 것인지 검토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사이버 시민 감시망을 활성화해 고발된 악덕 업체에 엄한 벌을 내려 사회가 어린이를 보호하는 분위기를 이끌어가야 한다. 더 이상 어린 청소년들이 사이버 환락세계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