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싱잉 인 더 레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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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스런 서양 음식을 뚝배기에 담는다면, 그 음식은 맛있을까 맛이 없을까. 뮤지컬 '싱잉 인 더 레인(8월 31일까지.정동 팝콘하우스.사진)'을 보면서 끝없이 드는 의문이다.

'싱잉 인 더 레인'은 1952년 진 켈리 주연의 영화로 탄생한 뒤 83년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뮤지컬로 제작됐다. 무성영화 시절 스타배우인 돈(박동하)은 얼굴은 예쁘지만 성격 나쁜 여배우 리나(이윤표)와 스캔들에 시달린다. 돈은 영화배우 지망생인 캐시(임선애)의 도움으로 유성영화 스타로 변신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5t의 비가 무대 위에 쏟아진다'는 등 화려한 수사를 붙이지 않더라도 이 작품은 아기자기하면서도 밀도 있다. 돈과 캐시의 잔잔한 사랑이 그렇고, 처음 '말하는 영화(유성영화)'가 나왔을 때 벌어진 각종 해프닝이 그렇다. 더빙한 대사와 화면 내용이 따로 노는 등 초창기 혼돈을 재치있게 표현했다. 무대 위 대형 스크린에 나온 '왕족 악당' '춤추는 기사' 등 흑백 영화 장면은 마치 옛날 영화관을 찾은 듯한 착각마저 든다.

목소리가 나빠 무성영화용 배우로 전락한 리나의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 연기와 돈의 친구 코스모의 재기발랄한 표정 등 배우들 연기도 좋았다. 1막과 2막의 엔딩 장면에 주제곡 '싱잉 인 더 레인'과 함께 쏟아지는 비는 보기에도 시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을 보면서 갈증이 드는 건 왜일까? 주연 배우가 바이올린을 들고 추는 2인무에서 악기를 떨어뜨리거나, 무대 배경막이 툭툭툭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것을 탓할 순 없다. 누구나 실수는 있는 법이니까.

문제는 배우들이 탁월한 연기력에 비해 춤과 노래가 다소 미흡하다는 점이다. 가볍고 경쾌한 춤을 춰야할 배우들의 몸은 무겁고 경직돼 보였다. '싱잉 인 더 레인'은 3개월간 장기 공연을 천명했다. 앞으로 남은 2개월 간의 성적표는 이들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는 듯하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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