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선택 장애’ 겪는 네티즌 … 만나는 사람과 결혼할지도 인터넷에 물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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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인터넷에 흔한 질문 중 하나가 미녀의 사진에 관한 것이다. 게시판에서 어떤 미모의 여성 사진을 올리고는 호(好), 불호(不好)를 묻는다. 이런 스타일의 미녀는 어떠냐는 거다. 사람의 취향은 각양각색이지만 네티즌은 어쨌든 호 또는 불호 중 답변을 골라야 한다. ‘미인이 좋은가’라는 질문에 무슨 호불호 선택의 고민이 있으랴 싶지만, 선택하라면 또 그게 갈등이 된다.

 그래도 미녀 호불호 문제는 쉽다. ‘탕수육을 부어 먹는 것이 나은가, 찍어 먹는 것이 나은가(부먹찍먹)’나 ‘순대에 맛소금이 맞나, 간장이 맞나’ 등의 논쟁은 유명하다. 한 유명 셰프가 답을 말해줬지만 선택 갈등은 계속된다. 문제가 ‘메이저리거 vs 행시 합격’ ‘최고 인기 강사 vs 일반 의사’ 등 직업 진로의 선택에 이르면 혼란스럽다. 인생을 걸고 고민해야 한다. 이런 인터넷 선택의 문제들 가운데는 ‘화장실 휴지를 벽 쪽으로 말아두는 것이 나은지, 앞쪽으로 말아두는 것이 나은지’ 하는 문제도 있다.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좀 더 예민하다. ‘대파를 사서 껍질을 한 번 벗기고 쓰는 것이 나은지, 두 번째까지 벗기고 써야 하는 것인지’ 묻는다. ‘눈치 없이 자주 찾아오는 귀찮은 이웃에게 오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이 나은지, 그냥 조용히 연락을 끊어야 하는 것인지’ ‘사촌 결혼식에 내는 축의금이 10만원이면 적당한지, 부족한지’ 등 선택의 고민은 끝이 없다.

 이 시대는 너무나 복잡하다. 특히 온라인은 수없이 많은 선택이 필요하다. 독자들은 지금 읽고 있는 이 글을 중간에서 그만두고 다른 기사를 읽을 것인지, 아니면 끝까지 다 읽을 것인지 벌써 마음 한쪽에서 갈등이 있을지 모르겠다. 다 읽고 나면 온라인에서 추천을 누를 것인지 또 고민해야 한다. 수없이 선택해야 한다. 넓은 모니터 화면에서 마우스로 누를 곳과 100개가 넘는 키보드 자판 어느 것을 누를지가 우리 삶을 피곤하게 한다.

 예전에는 이런 문제가 비교적 단순했다. 책을 들면 대체로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었다. 카세트테이프는 앞에서 뒤로 순서대로 돌아갔다. 선택이라봐야 멈추고 빨리 감기 정도? 고민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기승전결의 흐름이 분명한 시대였다. 그러나 컴퓨터 세대는 임의접근 메모리(Random Access Memory·RAM)에 익숙하다. 언제든지 글을 읽다가 마우스를 옮겨 다른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중간에 링크가 걸린 글로 튀어 나갈 수도 있다. 해찰이 많다 보니 기승전 다음에 뭐가 나올지 모른다. 그래서 결론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복잡한 상황에서 신이 나타나 억지로 문제를 해결해버린다는 설정)’로 가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수많은 선택의 문제에 놓이다 보니 결정장애를 겪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옷을 하나 고를 때도, 점심 식사 메뉴를 결정할 때도,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하나 사는 것도 결정을 못한다. 선택이 너무 많아 길을 잃어버리는 다기망양(多岐亡羊)이 이 시대에 어울리는 한자 성어인가보다. 사정이 이러니 ‘직장을 그만둬야 할지, 지금 만나는 사람과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인지’ 같은 심각한 문제를 인터넷에 묻는 것이 흔한 모습이다.

 그래서 나온 몇 가지 대안 가운데 하나가 전문가가 적당한 것을 골라주는 큐레이팅 서비스다. 인터넷은 뉴스와 기사, 볼거리와 상품을 끊임없이 추천해준다. 또 여러 사람이 고른 답을 보여주는 집단지성 서비스도 있다. 남들이 이렇게 선택했다는 것이다. 최다 조회 수, 실시간 검색어, 최다 공감 수 등이 이런 사례다. 아예 선택지를 없애버리고 ‘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라’는 식의 ‘답정너’ 서비스도 있다. 약관 동의 같은 경우다.

 사실 선택할 것이 많다는 것은 축복이다. 문제는 선택이 잘못됐을 경우에 대한 두려움이다. 한번 잘못 선택하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경쟁이 너무 치열한 세상이 실패를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택이 어려운 것은 남이 정해놓은 정답을 강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시대는 서로 끊임없이 상대를 관찰하는 특성이 있는 탓에 지나치게 남과 비교하고 남을 의식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남들과 같은 정답을 골라야 하는지 갈등하게 된다.

 데이터베이스로 유명한 오라클이라는 회사의 뜻은 신탁(Oracle)이다. 물으면 답을 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구글도 신에 비유해서 ‘구글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한다. 인터넷은 선택의 과제도 많이 주지만 답도 알아서 주는 것 같다. 하지만 선택은 결국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가 진정 원하는 것을 고르는 용기의 문제다. 탕수육 소스를 부어 먹거나 찍어 먹는 것에 무슨 정답이 있겠는가. 자기가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면 될 일이지, 미인은 제 눈에 들면 미인인 것이고….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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