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나타카-린즈셩의 '홈런왕 삼국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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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최고의 홈런타자는 누구일까.

한국·일본·대만이 자랑하는 오른손 강타자 박병호(29·넥센)·나카타 쇼(26·니혼햄)·린즈셩(33·라미고)이 프리미어 12에서 홈런왕 삼국지(三國志)를 펼치고 있다.

지난 14일 타이베이 톈무구장에서 열린 B조 예선 한국-멕시코전. 3회 초 박병호의 방망이가 힘껏 돌았다. 빨랫줄처럼 날아간 타구는 우중간 담장을 넘어갔다. 이번 대회 4경기 만에 터진 첫 홈런. 동료들은 일부러 박병호를 외면했다가 더그아웃에 들어오려 할 때 환호성을 지르는 이벤트를 펼쳤다. 박병호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번졌다.

4년 연속 홈런왕에 오른 박병호의 파워가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상대 투수 세자르 카리요는 자신의 장기인 싱커를 뿌렸다. 오른손 타자 몸쪽으로 달라붙는 싱커는 홈런을 치기 쉽지 않은 구종이다. 박병호는 억지로 잡아당기지 않고 밀어서 우중간 가장 깊숙한 곳으로 타구를 날려 톈무구장의 맞바람을 뚫었다. 대만 팬들도 박병호의 힘에 탄성을 내질렀다. LA 다저스 스카우트 출신인 마이크 브리토 멕시코 대표팀 감독은 "박병호는 메이저리거급 선수"라고 칭찬했다.

첫 홈런이 터지기 전까지 박병호는 상당한 부담감에 시달렸다. 이번 대회기간 그의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한 포스팅(비공개 입찰)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포스팅에서 승리한 구단이 미네소타로 밝혀졌지만 박병호는 "아직 계약이 된 게 아니라서 지금은 드릴 말씀이 없다. 대회에 집중하겠다"며 몸을 낮췄다. 그러나 팬들과 미디어의 관심이 그에게 쏠려 부담을 준 건 분명했다. 도미니카공화국과 베네수엘라와의 경기에서 박병호는 8타수 무안타 1볼넷에 그쳤다.

스트레스가 가중될 시점에 박병호는 결정적인 홈런을 때려내며 멕시코전 4-3 승리를 이끌었다. 8강 진출을 확정한 뒤 박병호는 "다른 선수들이 너무 잘했다. 심리적인 압박이 있었지만 잊으려고 했다. 팬들도 '잘 하라'가 아니라 '힘내라'고 응원해 주셔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박병호는 15일 미국전에서는 오른발가락 통증 탓에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큰 부상이 아니어서 8강전 이후 출전은 가능해 보인다.

일본은 주포 나카타를 앞세워 일찌감치 B조 1위를 확정했다. 나카타는 11일 멕시코전에서 0-1이던 2회 역전 투런홈런을 쳤다. 3회와 5회에도 적시타를 때린 그는 5-5이던 9회 끝내기 안타까지 날렸다. 12일 도미니카공화국전 2-2이던 8회 2타점 2루타를 친 나카타는 14일 미국전에서도 대나 이브랜드를 상대로 결승 스리런포를 터트렸다. 3경기 연속 결승타를 날린 그를 두고 대만 일간지 자유시보(自由時報)는 '동양 최고의 강타자'라고 극찬했다. 나카다는 대회 타점 1위(11개·14일 현재)를 달리고 있다.

나카타는 오사카 도인고 시절 87개의 홈런을 때려내 고교 최다 홈런기록을 세웠다. 2007년 니혼햄 입단 계약금이 1억엔(약 11억원)에 이르렀다. 통산 타율이 0.259로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파괴력은 일본 타자 중 최고 수준이다. 올해는 개인 최다인 30홈런(퍼시픽리그 6위)을 기록했다.

탈락 위기에 놓일 뻔했던 개최국 대만은 린즈셩 덕분에 살았다. 린즈셩은 14일 쿠바전에서 1-1로 맞선 8회 3점 아치를 그렸다. 9년 만의 쿠바전 승리를 이끈 홈런이었다. 린즈셩은 15일 푸에르토리코와의 경기에서도 선제 솔로포를 치는 등 대회 홈런 1위(4개)를 질주했다.

린즈셩은 장타이샨(39·은퇴)·천진펑(38·라미고)과 함께 대만 대표팀을 이끈 타자다. 선배들이 떠나면서 이제는 대표팀의 원톱이 됐다. 그는 대만 원주민 중 하나인 아메이족 출신이다. 대만 원주민들은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한족에게 밀려나 고산지대에서 힘들게 살고 있다.

1m83㎝·100㎏의 당당한 체격을 갖춘 린즈셩은 무시무시한 힘을 자랑하며 원주민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올 시즌 대만리그에서 타율 0.380을 기록하며 홈런 2위(31개)에 올랐다.

세 선수는 해외 진출을 꿈꾼다는 공통점도 있다. 미네소타와 연봉계약에 성공하면 박병호는 메이저리거가 된다. 내후년 자유계약선수(FA)가 되는 나카타는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지난해 일본 지바 롯데에서 테스트를 받았던 린즈셩도 해외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타이베이(대만)=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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