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보이' 이대호, 한국 선수 최초로 일본시리즈 MVP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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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보이' 이대호(33·소프트뱅크)가 한국 선수 최초로 일본시리즈(JS·7전4승제)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이대호는 29일 일본 도쿄 진구구장에서 열린 야쿠르트와의 JS 5차전에서 4번·지명타자로 출전해 결승 홈런을 날리며 5-0 승리를 이끌었다. 시리즈 전적 4승1패를 기록한 소프트뱅크는 지난해에 이어 2연속 우승과 함께 통산 7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5차전의 주인공도 이대호였다. 1회 초 중견수 뜬공으로 물러난 이대호는 4회 초 1사 3루에서 상대 선발 이시카와 마사노리의 4구째 시속 131㎞ 컷패스트볼을 힘껏 잡아당겼다. 큰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타구는 3루쪽 파울폴을 넘어 관중석에 떨어졌다. 선제 투런포. 마나카 미쓰루 야쿠르트 감독은 홈런 타구에 대한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이대호의 홈런으로 기세를 탄 소프트뱅크는 5회 초에도 안타 2개와 볼넷, 실책 등을 묶어 2점을 추가했다. 4-0이던 5회 2사 2루에서 야쿠르트는 이대호를 고의볼넷으로 내보냈다. 8회 초 1루수 파울플라이로 물러난 이대호는 3타수 1안타(1홈런) 2타점을 기록했다.

마운드도 탄탄했다. 선발 제이슨 스탠드릿지가 6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야쿠르트 타선을 막았고, 모리 유이토-에디슨 바리오스-데니스 사파테로 이어진 계투진도 3이닝 동안 점수를 내주지 않았다.

시리즈 MVP는 당연히 이대호의 차지였다. 1차전에서 3안타를 때려 승리의 주역이 된 그는 2차전에서 0-0으로 맞선 4회 결승 투런홈런을 날렸다. 3차전에서는 경기 전 목에 담이 들어 타격 훈련을 하지 못해 2타수 무안타에 그쳤고, 소프트뱅크는 4-8로 졌다.

통증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이대호는 4차전에서 4타수 3안타 4타점을 올렸다. 구도 기미야스 소프트뱅크 감독이 "목 통증이 있음에도 잘해줬다. 이제 그는 이대호 사마(樣·'님'이리는 뜻의 극존칭)"라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5차전에서도 결승타를 때린 이대호는 JS 5경기 통산 16타수 8안타(2홈런) 타율 0.500에 8타점을 기록했다. 앞서 이승엽·이병규·김태균 등이 일본에서 활약하며 JS 우승을 경험하긴 했지만 시리즈 MVP를 차지한 건 이대호가 처음이다.
이대호는 2012년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에 입단한 뒤 줄곧 4번타자로 나섰다. 지난해 소프트뱅크로 이적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퍼시픽리그 최강 타선을 자랑하는 소프트뱅크에서도 그의 타선은 고정됐다. 그러나 올 시즌 구도 감독이 부임하면서 입지가 흔들렸다. 베테랑 우치카와 세이이치가 4번에 배치됐고, 이대호는 5번타자가 됐다. 지난해 팀내 홈런 1위(19개)였지만 4번타자로서 타점(68개)이 적다는 이유에서였다. 일본 야구가 '4번'의 의미를 크게 둔다는 걸 감안하면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이대호는 타순 변경을 불평없이 받아들인 뒤 실력으로 진가를 뽐냈다. 올 시즌 타율은 0.282로 지난해(0.300)보다 낮아졌지만, 홈런 31개(리그 5위), 타점 98개(4위)를 올렸다. 우치카와가 갈비뼈 부상을 입어 이대호는 JS에서 4번으로 나섰다. 한국에서 뛸 때 '조선의 4번타자'로 불린 그가 '일본의 4번타자'로 자리매김한 순간이었다. 이대호는 "정말 기쁘다. 이제 편안히 잘 수 있을 것 같다. 동료들이 기회를 많이 만들어줘서 갚고 싶었다. 우치카와 덕분에 이 자리에 섰다.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대호의 맹활약은 프리미어 12에 출전할 야구 국가대표팀에도 큰 힘이다. 선수들의 부상과 도박 사건 등으로 정예 멤버를 꾸리지 못한 대표팀에서 이대호의 비중은 어느 때보다 크다. 대표팀에서도 이대호는 박병호(29·넥센)와 함께 4번타자 후보로 꼽힌다. 국제대회 경험이나 최근 타격을 감안하면 이대호가 4번에 배치될 가능성이 크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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