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소송 이겨도 변호사 비용 더 드는 민사소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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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에 사는 정모(71)씨는 3년 전 자신의 땅에 담장을 설치하려다 이웃 주민 A(52·여)씨와 다툼이 생겨 소송을 시작했다. A씨 토지와 맞닿은 경계 도로에 담장을 설치하려하자 A씨가 도로 소유권을 주장하면서였다.

사실 경계 도로는 정씨 소유였는데 20년 전 A씨의 전 남편이 진ㆍ출입로로 쓰겠다고 해 승낙했던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A씨가 경찰에 신고해 담장설치 공사를 방해하자 정씨는 담장설치방해 금지 가처분신청과 함께 부동산 인도 청구소송(소가 1000만원짜리로 간주)을 법원에 냈다. 이에 A씨는 통행권 확인 소송으로 맞섰다.

고작 44㎡(약 13평)짜리 땅 때문에 시작된 소송은 항소ㆍ상고심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5건으로 늘어났다. 정씨는 변호사 선임비로 당초 400만원을 지출했으나 파생 소송에 성공보수금까지 합쳐 총 2000만원을 썼다. 정씨는 패소한 A씨로부터 변호사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법원이 인정한 소송 비용은 400여만원에 불과했다. 결국 소송에 이기고도 자기 돈 1500여만원을 더 쓴 셈이 됐다.

민사소송법 98조는 ‘소송 비용은 패소한 당사자가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민사소송에서 승소하면 변호사 비용 전부를 상대방에게서 돌려받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같은 법 109조가 걸림돌이다. 여기엔 ‘변호사에게 당사자가 지급했거나 지급할 보수는 대법원 규칙이 정하는 금액의 범위 안에서 소송 비용으로 인정한다’고 돼 있다.

예컨대 규칙상 소송가액이 1000만원 이하라면 소송비용에 포함되는 변호사 보수는 8%다. 즉 80만원 정도가 패소자가 보전할 변호사 보수로 적당하다고 본 것이다. 이게 기준이 돼 소가 2000만원 이하 소송은 150만원, 소가 3000만원 이하 소송은 210만원 등이 적정선으로 제시돼 있다. 대법원 규칙에 따라 산정된 보전 변호사 보수가 실제 당사자들이 지출한 것과 차이가 클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김한규)가 최근 소속 회원 104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도 이같은 상황을 뒷받침한다. 소가가 2억원 이상인 사건의 경우 응답 변호사의 50%가 선임료로 1000만~2000만원 가량을 받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현행 규칙상 보전받을 수 있는 한도는 680만원이다. 민사소송에서 승소해도 적게는 320만원에서 많게는 1320만원을 더 내야 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돌려받는 소송 비용이 적다보니 소송을 포기하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한다. 영세공사업체 대표 안모씨는 건설사 측으로부터 공사대금 1000만원을 지급받지 못해 변호사 상담을 받았다. 그러나 선임료가 적어도 500만원은 들고 승소시 보전받을 수 있는 변호사 보수가 80만원 밖에 안 된다는 얘기를 듣고 소송하려던 생각을 접었다.

대법원 규칙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대법원이 소송비용에 산입하는 변호사 보수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2007년 개정 후 그대로인 보수를 현실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서다.

대법원 관계자는 20일 “소송 당사자가 재판에 이기고도 변호사 비용을 제대로 못 받는 것은 정당한 권리구제가 아니라고 봐서 올해 안으로 현행 규칙을 개정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현실화시 남소를 방지하고 조정ㆍ화해를 유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다만 서민 등 경제적 약자가 패소를 우려해 소송을 내는 걸 꺼릴 수 있어 인상 적정폭에 대해 고심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나온다. 중견 로펌의 한 변호사는 “변호사 수가 많아지면서 선임료 단가가 많이 내려가 일반인은 큰 필요성을 못 느낀다”며 “소가 5억원 이상 사건이 많은 대기업이나 이를 대리하는 대형로펌이 지출 비용에 비해 보전액이 적다보니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라고 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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