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법체류자 천국을 만들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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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불법체류 외국인근로자들의 출국유예시한이 8월 말로 다가온 가운데 외국인 고용허가제의 임시국회 통과가 사실상 물건너가 이들의 강제출국 문제로 대혼란이 예상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여야간 의견대립으로 이 법안을 법안심사소위에 넘기는 데 실패했다. 불법체류자들의 강제출국과 이에 따른 중소기업의 인력대란이 눈앞에 닥친 것이다.

우리는 현행 산업연수생제가 빚어낸 여러 문제의 해결책으로 고용허가제의 조속한 도입을 촉구해왔다. 불법체류 자체를 없애 인권침해를 해소하고, 경기변동에 따라 인력공급을 조절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법 제정은 여야가 지난해 대선에서 함께 공약한 사안이었다.

한나라당은 임금부담이 높아질 중소기업의 사정을 고려해 법안처리에 반대했다 한다. 하지만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 외국인근로자의 임금은 입국 전 많은 한국 취업 희망자와의 경쟁과정에서 결정된다.

결과적으로 초과공급 상태의 노동시장이 형성되고 이는 임금수준을 끌어내리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90%가 넘는 중소기업체가 고용허가제를 통해서라도 합법적.안정적으로 외국인을 고용하기를 원한다는 사실도 조사 결과 확인된 바 있다.

정치권은 국민과 약속한 대로 이제라도 법안을 처리해 혼란을 막아야 한다.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국가의 주요 정책을 표류시킨다면 그것이야말로 무책임한 처사다.

정부도 끝내 법안처리가 무산될 경우의 대비책도 세워놓아야 한다. 20만명에 이르는 불법체류자의 강제출국조치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두차례 유예를 해온 만큼 이번에는 '한국은 불법체류자의 천국'이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서라도 출국을 원칙으로 해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일시 강제출국에 따르는 충격이 크다면 제조업종사자는 유보한 채 서비스업소 종사자들을 먼저 내보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현재 4만여명선인 산업연수생 규모를 확대해 인력난의 고비를 넘기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원칙은 지키되 충격은 최소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