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년 만에 천지개벽한 덕률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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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통신 130주년 특별전시회’가 21일 오후 서울 KT 광화문 올레스퀘어에서 열렸다. 개막식에 참석한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홍문종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장, 권은희 새누리당 의원, 황창규 KT 회장(오른쪽부터)이 옛날 전화기를 보고 있다. KT는 한성전보총국을 모태로 하는 기업이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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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통신산업이 시작된 지 130년이 됐다. 1885년 9월,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전신선 운영을 위해 한성전보총국이 문을 연 게 첫걸음이다.

KT, 총국 개국 기념식
“5G로 시장 선도할 것”

 한성전보총국을 모태로 하는 KT는 총국 개국 130년을 맞아 2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올레스퀘어 야외 행사장에서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홍문종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장 등 국내외 통신산업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민국 통신 130년 기념식’을 열었다.

 홍문종 위원장은 “전신 업무를 시작으로 유·무선전화·인터넷·스마트폰 등으로 이어진 지난 130년간의 통신 역사는 지금의 대한민국을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으로 우뚝 세운 핵심 인프라였다”고 말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국내 통신산업의 틀을 바꾸는 계기도 많았고, 얽힌 에피소드도 적지 않다.

 1896년 왕실 궁내부에 최초로 자석식 전화가 개통됐다. 당시 전화는 영어 단어 텔레폰(telephone)을 음역한 ‘덕률풍’으로 불렸는데 고종은 ‘덕률풍’으로 직접 칙교를 내리는 일이 많았다. 고종이 퇴위한 이후 순종은 매일 전화로 고종에게 문안 인사를 올렸고, 1919년 고종이 승하하자 덕수궁에 차린 혼전과 묘소인 홍릉 사이에 직통전화를 놓아 곡을 했다고 한다.

 61년에는 국산전화기 ‘체신1호’가 선보였고 1962년부터는 빨간색 공중전화가 다방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80년대 중반까지 전화기는 ‘부의 상징’이었다. 84년에 백색전화기 5대면 당시 시세로 1000만원 정도하던 30평대 서울 강남 아파트 1채를 살 수 있었다. 또 카폰 한대 가격은 400만원으로 포니자동차 2대 가격이었다.

 이렇게 전화를 놓을 수 있는 권리에 프리미엄이 붙어 거래되던 현상은 86년 순수 우리 기술로 만든 자동식 전자 교환기 TDX-1가 나온 후 사라졌다. 이후 전화 가입자는 빠르게 증가해 88년 1000만 가입자를 기록하며 ‘1가구 1전화 시대’를 열었다.

 84년에는 지금의 LG유플러스가 국내 최초의 PC통신인 천리안을 시작했다. 천리안은 이후 800만 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90년대에 들어와서는 삐삐 열풍이 불었다. 초기에는 의사나 국가기관 요원들만 사용하는 기기였으나 음성사서함 서비스가 제공되고 디자인이 다양해지면서 ‘졸업선물 1위’리스트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94년에는 KT의 전신인 한국통신이 인터넷서비스 ‘코넷’(KORNET)을 시작하며 인터넷 상용화 시대가 열렸다.

 이동통신시장의 경우 96년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 상용화 이후 2009년 스마트폰 도입, 2015년 데이터중심요금제 출시 등으로 성장에 가속도가 붙었다.

 통신산업이 경제전반에 미친 영향도 크다. KT경제경영연구소가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유선전화 보급이 본격화된 1980년부터 2013년까지 국내 유·무선 총 통화건수는 약 2조6000건이고, 이를 2014년 말 기준 시내통화 평균거리 24km에 대입하면 전체 통화가 64조km가량의 이동거리를 절감해준 것으로 나타난다. 또 이를 최근 주유비로 계산하면 7847조원의 경제적 가치를 제공한 것으로 분석된다.

 황창규 KT 회장은 “대한민국 통신 130년의 역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KT가 앞으로는 전세계로 시장을 넓혀 차세대 통신인 5G를 선도해 나가겠다”말했다.

글=함종선 기자 jsham@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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