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로 없애고 산책·놀이 공간 … 시민에게 센강 돌려준 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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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2015년 4월 보행자 접근을 유도하는 그림을 바닥에 새겨 넣고 컨테이너 박스를 활용해 카페로 꾸몄다. 또 걷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대형 시설물 설치를 제한했다. [장혁진 기자], [사진 APUR]
2013년 7월 이전 2013년 파리시는 주차장과 차도로 쓰이던 오르세 미술관 앞 강변길을 공원으로 조성했다.

“Circulation interdite, zone pietonne(차량 통행 금지, 보행자 전용도로).”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앞 센강의 강변도로 입구에 붙은 안내판이다. 입구 쪽에 볼라드(말뚝)가 여러 개 박혀 있어 차량 진입이 불가능했다. 시민과 관광객들은 이 길을 통해 센강으로 자유롭게 드나든다. 길 바닥엔 숫자 미로와 러닝 트랙 등 다양한 그림들이 새겨져 있었다. 로랑스 도드 파리시 도로교통부 공공사업과장은 “어린이들의 도심 속 놀이공간일 뿐 아니라 눈에 잘 띄는 색깔 때문에 보행자 접근을 유도하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2013년 7월 파리는 오르세 미술관 앞에서 앨마 포구까지 이어지는 2.3㎞의 2차선 도로를 완전히 폐쇄하고 보행 공원으로 만들었다. 2010년 사업 계획을 발표했을 땐 반대 여론이 만만찮았다. 주변 차량 통행이 10~20분씩 늦춰질 것이란 의견 때문이었다. 약 3500만 유로(당시 환율 기준 507억원)이란 막대한 사업비도 문제였다.

 하지만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시장의 의지는 확고했다. 파리시는 30여 차례의 주민회의와 공청회를 열었다. 교통 혼잡을 우려하는 중앙정부 관계자들에겐 상부 도로의 신호체계 개선책을 마련해 설득했다. “자동차에 점령됐던 센강을 파리시민들에게 돌려주려는 것”이란 설명에 시민들도 마음을 돌렸다. 그 결과 정부 심의도 무난히 통과할 수 있었다.

 ‘걷고 싶은 도시’를 지향하는 파리는 보행 정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펴는 도시로 꼽힌다. 고가철도를 보행로로 만든 프롬나드 플랑테, 시내 곳곳을 달리는 2만4000여 대의 공공자전거 밸리브(Velib) 등은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도미니크 알바 파리도시설계연구원장은 “파리는 지난 10년간 차량 이용률을 35% 줄였고, 그 결과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이용하는 시민이 60%에 달한다”고 말했다. 그는 “매주 교통·건축 등 다양한 부서와 논의를 진행하는 공동협의체도 상설화돼 있다”고 했다.

 파리 발(發) ‘보행 혁명’은 유럽 각지로 뻗어나갔다. 영국 런던은 ‘읽기 쉬운 런던(Legible London)’ 프로젝트를 통해 누구나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표지판과 시설물 규정을 통일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하이드파크 인근에 조성한 박물관 거리(Exhibition road)가 대표적 사례다. 스페인 마드리드는 구도심 대부분을 보행전용공간(Zona peatonal)으로 지정했다.

 서울은 어떨까. 서울시는 1998년 명동·인사동의 ‘차 없는 거리’를 시작으로 청계천(2005년)과 광화문광장(2009년) 등을 조성했다. 지난해 9월엔 2018년까지 세종대로·청계천 등 4대문 안 도로 15.2㎞의 차선 1~2개를 줄여 보행로를 넓힌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승효상 서울시 총괄건축가는 “지난 20년간 우후죽순 생긴 서울의 보행공간은 뿔뿔이 흩어져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며 “끊어진 길들을 잇는 종합적인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리=장혁진 기자 analo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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