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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아버지의 일기에서 배우다, 76년간의 희노애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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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9월의 책] ‘대결보다 공존’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 하는 ‘이달의 책’에서는 공존을 주제로 한 책 세 권을 골랐습니다. 낯선 동물 참매와 소통하며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극복한 여교수의 이야기, 12세부터 87세까지 자신의 몸과 매일 대화하며 그 변화를 기록한 소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치열한 경쟁 대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바람이 선선해지는 계절, 함께 하는 삶을 고민해보시길 권합니다.

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문학과지성사
488쪽, 1만7000원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변호사의 편지가 도착한다. 아버지의 짐을 보관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짐은 일기장인데 내면의 이야기를 적어놓은 일기가 아니다. 철저히 몸에 대해 쓴 것이다. 12세부터 87세까지 기록한 신체의 이야기다.

 아버지가 딸에게 전해주는 자신의 몸 이야기가 이 소설의 내용이다. 어린 시절의 몸은 성장을 담고 있다. 이상하리만치 빨리 변하는 몸 구석구석을 파악하는 데 온 신경을 쏟는다. 나이를 먹을수록 몸은 시간에 끌려다닌다. 30대 후반부터 몸에 점이 생기고 에너지가 떨어지며 곧 노안도 시작된다. 60대 이후로는 말할 것도 없다. 신체는 몸이라기보다 짐에 가까워진다.

 몸에 대해 무슨 일기까지 쓸까 싶지만, 소재는 끝도 없다. 성에 대한 관심, 악몽, 건강염려증뿐 아니라 입술 물어뜯는 버릇, 치통, 코막힘, 여드름, 하품까지 기록한다. 계단에서 떨어지는 아들을 끌어안고 함께 굴렀을 때의 묘사는 부성애 같은 감정도 몸의 감각과 멀리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쯤되면 궁금해진다. 왜 몸인가. 일기의 화자인 아버지는 어린 시절에 제1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그의 아버지는 참전 후 산송장이 돼 돌아왔다가 세상을 떠났다. 사춘기에 겪은 공허함은 마치 자신의 몸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충격이었다. 그는 12세에 기록한다. “몸을 다시 찾기 위해 일기를 쓰겠다”고. 몸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직시하고 기록해야만 두려움을 쫓을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이다. 그는 몸을 정신의 ‘동거인’으로 보고 객관적으로 기록한다.

 몸을 들여다보는 동안 바깥 세상은 여전히 불안하다. 어머니는 연합군의 폭격으로 시신도 찾을 수 없이 세상을 떠난다. 우정·사랑 같은 모든 감정을 몸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이런 세상에서 믿을 것은 눈에 보이는 신체뿐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래서 그는 몸의 신호에 충실히 반응해 꼼꼼히 기록한다. 그리고 딸에게 이렇게 쓴다. “이 일기는 생리학 논문이 아니라 내 비밀 정원”이라고.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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