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도 힘없는 인턴으로 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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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영화 ‘오피스’에 출연한 배우 고아성. 그는 타인을 습관적으로 관찰한다고 했다. 관찰을 통해 연기에 필요한 영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리틀빅픽쳐스]

유약해 보이지만, 눈빛으로 강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얼굴. 조숙함이 물씬 풍긴다. 공일오비(015B)의 노래를 즐겨 듣고, 이른 새벽에 차를 몰고 거리를 돌아다닐 때 충전이 된다는 배우. 고아성(23)이다.

 올 봄 SBS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연출 안판석)에서 고3 때 혼전 임신을 한 캐릭터 서봄 역을 맡아 당찬 연기를 보여준 그가 스릴러 영화 ‘오피스’(9월 3일 개봉, 홍원찬 감독)로 돌아왔다. ‘오피스’는 데뷔 10년차에 접어든 그의 아홉 번째 영화. 최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고아성은 하루종일 이어진 매체 인터뷰에도 피곤한 기색 전혀 없이 조곤조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오피스’는 평범했던 회사원 김병국 과장(배성우)이 자신의 가족을 살해하고 종적을 감춘 뒤 그의 회사에서 연이어 벌어지는 의문의 사건을 그린다. 영화에서 그가 맡은 배역은 사라진 김병국 과장과 가까웠던 인턴 이미례. 성실하게 일하지만 소심한 편이고, 회사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역할이다. 선배들이 소곤소곤 주고받는 대화에 온 신경이 집중될 정도로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는데, 유학파 출신의 새 인턴이 팀으로 들어오면서 스트레스는 가중된다.

 “겉으로는 강인한 척하지만, 사실 뼛속까지 약한 인물이에요. 그런 모순을 안고 있다는 점에 매력을 느꼈어요. 미례가 가진 열등감, 위기감 같은 감정이 낯설지도 않았고요.”

 고아성은 아역 배우 출신이다. 네 살 때 처음으로 광고를 찍었고, 열네 살 여중생 시절 첫 영화 ‘괴물’(2006, 봉준호 감독)로 주목받았다. ‘괴물’ ‘여행자’(2009, 우니 르콩트 감독)에 이어 ‘오피스’로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세 번이나 밟았다. 크리스 에반스, 틸다 스윈튼 같은 할리우드 스타가 출연한 영화 ‘설국열차’(2013, 봉준호 감독)에도 참여했다.

 “20대가 됐을 때 배우로 살지 못하면 어떻게 할까. 이런 생각을 하며 불안해했던 적도 있어요. 하지만 이제는 연기에 대한 마음이 확고해지는 것 같아요. 제가 얼마나 영화를 사랑하는지도 잘 알게 됐고요.”

 그는 열여섯 살 때부터 하루도 빠짐 없이 일기를 써오고 있다. “무심하게 흘러가는 일상에서 진솔함을 느끼고 싶어서”다. 수필집을 즐겨 읽는 것도 같은 이유다. 요즘에는 한강 작가의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2007, 비채)를 읽고 있다고 했다. 그에게 일기는 자신의 삶을, 수필집은 타인의 인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窓)인 셈이다.

 그는 인터뷰 도중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가 조심스레 이런 말을 꺼냈다.

 “만약 힘든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과 공유를 안 하는 편이에요. 혼자 헤어 나오는 게 마음이 편해서죠. 오롯이 홀로 견뎌내는 게 제 성향이거든요.”

 고아성은 요즘 한창 ‘오빠 생각’(이한 감독)을 촬영 중이다. 6·25 전쟁 당시 고아가 된 아이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선생님 역할이다. “이번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영화”라고 했다. 다음엔 어떤 얼굴로 돌아올지 기대된다.

지용진 기자 windbreak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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