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혁신에 자이언츠가 전위부대로 활약할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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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에서 어느 팀이 가장 인기 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팬들의 애증을 합친 총량은 롯데 자이언츠가 가장 높은 건 확실하다. 1991년 프로야구 최초로 홈 관중 100만 명을 돌파했던 자이언츠는 2003년 8개 구단 중 최소 관중(15만722명) 팀으로 전락했다. 2002년 10월 19일 사직 한화전에는 69명만 들어왔다.

자이언츠가 4년 연속 꼴찌를 벗어난 2005년부터 팬들의 발걸음이 다시 몰렸다. 2008년부터 5년 동안엔 평균 130만명(경기당 2만명) 가까운 관중을 기록했다. 자이언츠 팬들은 뜨겁게 응원했고, 흥겹게 노래했다. 사직구장은 세상에서 가장 큰 술집이고 노래방이었다.

자이언츠 팬들의 ‘탄력성’은 이처럼 타 구단을 압도한다. 자이언츠는 롯데 계열사 중 가장 큰 사랑을 받았으며, 동시에 가장 많은 욕을 먹었다.
지난해 선수단 사찰 논란이 불거지고 순위가 7위까지 떨어지자 관중은 83만 명으로 감소했다. 일부 팬들은 롯데 자이언츠를 인수해 조합 형태의 시민구단 ‘부산 자이언츠’를 만들겠다며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지난 겨울 자이언츠 팬클럽연합회는 야구단 사장·단장 퇴진을 요구했고 이를 관철시켰다.

최근 롯데그룹은 '형제의 난'으로 시끄럽다. 신동주(61) 전 일본 롯데 부회장과 신동빈(60) 롯데그룹 회장이 경영권을 다투는 과정에서 그룹의 불투명한 소유구조와 불합리한 의사결정 시스템이 세상에 드러났다. 롯데그룹의 축소판이 자이언츠라는 생각도 든다.

지난 11일 신동빈 회장은 지배구조와 경영투명성을 제고하겠다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앞서 신동인(69) 구단주대행은 사의를 밝혔다. 신 구단주대행은 구시대적 방식으로 자이언츠를 쥐고 흔들었다. 구단주대행이 물러나면 자이언츠는 오히려 대대적인 개혁을 실행할 수 있다.

자이언츠 자문위원을 지냈던 전용배 단국대 교수(스포츠 경영학)는 “자이언츠엔 34년 역사에 걸맞은 전통과 철학이 없다. 전문가가 아닌 오너 마음대로 운영했기 때문이다. 삼성 라이온즈는 한국시리즈가 끝난 다음날부터 보고서를 만들어 발전 방안을 찾는다. 넥센 히어로즈과 NC 다이노스는 짧은 기간에 선진 시스템을 구축했다. 레거시(legacy·유산)가 없는 자이언츠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경영 측면으로 보면 야구단은 매년 적자를 내는 작은 계열사다. 그러나 프로야구는 전국민적 사랑을 받기에 무형의 가치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1990년대 롯데가 그랬다. 전 교수는 “1982년 자이언츠를 창단할 때 롯데그룹은 재계 30위권이었다. 소비재 중심의 롯데가 재계 5위로 성장하기까지 야구단의 역할과 부산시민들의 성원이 컸다”고 말했다.

LG 트윈스는 1990년 창단하자마자 우승하며 인기 구단으로 도약했다. 94년 두 번째 우승 후 럭키금성그룹이 사명을 LG로 변경했을 만큼 대외 홍보·사내 통합의 큰 역할을 야구단이 해냈다. 지난 6년 동안 5차례나 꼴찌에 머문 한화 이글스가 올 시즌 극적인 승부를 펼치며 그룹 이미지를 크게 개선한 것도 좋은 사례다. 롯데그룹 혁신에 자이언츠가 전위부대로 활약할 수 있다.

현재 롯데그룹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위기일수록 로열티 높은 고객은 기업의 큰 자산이 된다. 자이언츠를 정상화한다면 롯데그룹의 개혁의지를 신뢰할 수 있을까. 적어도 자이언츠 팬들은 그렇게 믿을 것이다.

박소영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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