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 원칙서 실리로 … 한·중·일 정상회의가 분수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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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하반기에는 한반도 주변에서 대형 외교이벤트가 줄줄이 펼쳐진다.

다음달 3일 중국에서 항일전승절 행사가 열리고, 9월 말 미·중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10월에는 북한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행사(10일), 한·미 정상회담(16일)이 열린다. 한·중·일 정상회의도 열린다면 10월께가 유력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대북한·대일본 관계와 관련해 ‘협력’을 강조한 이유다. 특히 박 대통령이 경축사를 발표한 다음 날인 16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MBC ‘시사토크 이슈를 말한다’에서 “남북 간 정상회담도,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통일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다면 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임기 5년의 절반을 ‘과거사 해결이 우선’ ‘북한의 진정성 있는 행동이 우선’이라고 강조해온 ‘원칙외교’ 기조에 변화가 생겼다고 보고 있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난 2년 동안 원칙외교에만 바탕을 두다 보니 외교고립론, 중국경사론이 나오는 등 손해를 많이 봤다”며 “한·중·일 정상회의 등 중요한 외교일정이 많은 지금이 패러다임 변화의 적기라는 판단 아래 외교정책 기조를 변경하겠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 관계자도 “하반기에 중요한 외교일정이 있는 만큼 말로만 하지 말고, 진짜 주도적·능동적으로 실리를 챙기자는 게 현재 분위기”라고 말했다.

 외교정책 기조 변화는 대일 관계에서 뚜렷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아베 담화를 정색하고 비판하면 그동안의 상황을 되풀이하는 것밖에 안 된다”며 “한국은 국익에 맞춰 유연성을 갖고 한·일 관계를 풀 의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일본 측에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해 주도권을 갖는 게 훨씬 낫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기류 변화는 지난 3월 21일 서울에서 한·중·일 외교장관회의가 열린 뒤 시작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중·일 3국 정상회의는 한국이 의장국인 데다 미국 또한 이 회의에 기대하는 바가 있다”고 말했다. 최근 중·일, 북·일 등 한국을 제외한 동북아 지역 내 국가들의 관계 개선 움직임도 외교 기조 변화에 영향을 줬다.

특히 그동안 한·일 관계와 속도를 맞춰온 중·일 관계는 지난해 11월과 올해 4월 두 차례 중·일 정상회담을 거치며 저만치 앞서가는 분위기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이전의 투트랙 외교가 실천보다 원칙에 가까웠다면 지금부터는 진정한 투트랙을 고민해야 될 시기가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전략 변화가 맞닥뜨린 장애물도 적지 않다. 미국은 한국 정부의 9월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9월 초로 예정된 아베 총리의 방중도 미측의 압박으로 성사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한·미 정상회담 일정을 미리 확정·발표하는 등 성의를 보였다고 하지만 미측의 거부감을 희석시키는 게 외교 과제”라고 말했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도 쉽지 않다. 당장 17~28일 한·미 연합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이 열린다. 북한이 가장 민감해하는 한·미 군사훈련이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박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지뢰 도발을 거론한 데 대해 16일 “악담을 늘어놓아 만사람의 경악과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며 “값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위협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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