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일본 소설, 섬세한 감각 돋보여” … 에쿠니 “한국 문학은 서사·테마 뚜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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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이승우(오른쪽)씨는 해외에서도 문학성을 인정받는 작가다. 일본의 에쿠니 가오리는 감각적인 작품으로 인기가 높다. 두 사람은 대담에서 “독자의 눈치 보지 않고 쓰고 싶은 얘기를 쓰겠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한국소설은 정말 위기인가. 일본소설은 상대적으로 나아 보인다. 한국 작가 이승우(56)와 일본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51). 두 사람이 만났다. 국적, 성별, 문학성과 대중성(이승우가 문학성)…. 여러모로 대조적이지만 상대를 배려하며 문학과 인생 얘기를 나눴다. 최근 중국에서 열린 동아시아문학포럼에서다.

 - 서로의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고 들었다.

 ▶에쿠니 가오리(이하 에쿠니)=우연히 이승우씨의 『식물들의 사생활』을 읽고 전신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치밀하고 지적이었다. 내 소설과 비교하면 ‘허들(hurdle)’이 높은데(작품이 어렵다는 뜻) 그러면서도 비슷한 점이 있다고 느꼈다. 세상이나 언어에 대한 의구심 같은 게 있다.

 ▶이승우(이하 이)=에쿠니의 소설은 문장이 간결하고 감각적이다. 하고 싶은 얘기를 주저하지 않고 해버린다. 그런 점은 나와 다르다. 하지만 인물의 내면, 사회와 충돌해 생긴 상처를 다루는 건 비슷하다. 소설은 두 명만 있어도 되는 거다. 둘이 있으면 사회 아닌가. 독자와 소통하는 비결은 내가 배워야 할 거다.

 ▶에쿠니=이승우씨는 독자에게 다가가기보다 독자가 다가오길 바라는 것 같다.(웃음)

 ▶이=계속 책 팔리지 말라는 소리네.

 ▶에쿠니=그게 아니라 쉽고 가벼운 소설이 잘 팔리는 현상은 문제라는 얘기다. 요즘은 인터넷 덕에 아무나 글을 올려 책을 낸다. 내 소설도 처음에는 아무도 읽으려 하지 않았다. 나를 이해하는 편집자가 있었고, 그 편집자를 따르는 독자들이 차츰 읽기 시작했다.

 ▶이=나는 잘 읽히는 소설을 쓸 생각도 능력도 없다. 하지만 독자와의 소통능력, 대중성이 굉장한 자질이라는 점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작가의 세계에 공감하는 독자와 소통하는 게 소설 쓰기의 근본 아니겠나.

 -두 분 소설에는 비정상적인 인물이 많이 나온다. 예컨대 에쿠니 가오리의 『반짝반짝 빛나는』은 정신병을 앓는 아내와 동성애 남편 , 이승우의 『식물들의 사생활』은 장애인의 성욕이 소재다.

 ▶이=예외적인 개인을 특별한 사례로 제시해서는 의미가 없다. 어떤 행동이나 사건의 계기와 내면적 이유가 공감을 자아내도록 써야 한다. 개인의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든 세상과 연결된다. 그래서 보편적이기도 하다.

 ▶에쿠니=어떤 사람이 평범하다는 얘기를 잘 믿지 않는다. 누구나 알고 보면 특이하다. 처참한 살인사건 뉴스를 봐라. 나이 들며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현실은 언제나 소설보다 기상천외하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실감나게 쓰느냐, 공감 가게 쓰느냐다.

 -한국과 일본의 소설은 사뭇 다른데.

 ▶이=체험을 그대로 쓰는 사소설(私小說)의 영향인지 일본 소설에는 일상의 섬세한 감각 같은 게 있다. 뚜렷한 줄거리가 없어도 소설이 잘 굴러가는 것 같다.

 ▶에쿠니=한국 문학계는 확실한 서사나 테마가 없으면 소설 쓰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에 일본 소설 팬이 많다면 그런 차이 때문이 아닐까.

 -소설은 확신보다는 회의의 예술 장르인가.

 ▶에쿠니=어떤 문제에 대해서 단호한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이 늘 의심스러웠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이=세상과 인간을 잘 믿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살면서 그런 본성이 변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매달리다 보니 계속해서 소설을 쓰게 된다.

-e북·인터넷 때문에 종이책이 위협받는다.

 ▶에쿠니=나는 e북으로 소설을 출간하지 않는다. 종이책을 읽지 않고 책장에 꽂아만 두어도 사람에게 뭔가 영향을 주리라고 생각한다. 영상매체 때문에 문학이 없어질 거라고들 하는데 독자들이 그렇게 바보는 아니라고 믿는다.

 ▶이=소설이 앞으로 종이책 말고 어떤 다른 매체에 담길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건 출판사와 세상에 맡기고 작가는 그저 쓸뿐이다.

글·사진=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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