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내수 부진 … “메르스 없었어도 0%대 성장 그쳤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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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적 경기 후퇴가 아니라 구조적인 저성장의 덫에 걸렸다’.

 5분기 연속 0%대 경제성장률에 대한 경제 전문가들의 우려다. 최근의 경기 침체가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이나 가뭄 같은 일시적 요인 탓이 아니라는 얘기다. "메르스와 가뭄이 없었어도 전기 대비 0%대 성장률에 머물렀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성장의 두 축인 수출과 내수 모두가 고장 났다. 그런데 돌파구를 열어야 하는 정부는 국회에 발목이 잡혔다. 이념에 갇힌 정치권은 민생은 외면한 채 정쟁에만 몰두하고 있다. 내년 총선거까진 이제 1년도 남지 않았다. 총선을 넘어서면 대통령선거가 기다린다. 이대로 가다간 2%대 저성장이 고착화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성장엔진은 기업이다. 그러나 국내 기업은 사면초가에 빠졌다. 수출전선은 일본의 엔저 공습에 흔들리고 있다. 2012년 100엔당 1413원(평균 환율)이던 엔화 대비 원화가치는 지난 2분기엔 904.7원으로 올랐다. 단순히 엔저뿐 아니라 잇따른 구조조정과 혁신으로 체력을 회복한 미국과 일본 기업의 역습에 국내 기업이 고전하고 있다. 최근엔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마저 주가가 급락하는 등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배현기 하나금융경영연구소장은 “엔저 영향으로 자동차와 철강이 타격을 받은 데다 중국 경제가 둔화되면서 수출이 나빠지고 있다”며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국내에선 임금체계 개편 없이 내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의 정년이 60세로 연장된다. 최저임금도 최근 5년 사이 큰 폭으로 올랐다. 이런 마당에 야당은 법인세 인상 카드까지 들고 나왔다.

 정년 연장은 이미 시작된 베이비부머의 ‘퇴직 쓰나미’와 맞물려 50대 명예퇴직을 양산하고 있다. 퇴직하고도 구직시장을 맴돌아야 하는 ‘반퇴세대’는 지갑을 열기 어렵다. 그럴수록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의 기득권 지키기 집착은 강해지고 있다. 그 후유증은 실업의 늪에 빠진 청년층이 앓고 있다. 고령화라는 ‘소리 없는 재앙’도 눈앞에 다가왔다. 2017년엔 15~64세의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이미 생산성 향상이 정체돼 성장잠재력이 떨어지고 있고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민간소비도 크게 늘 수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위기 극복을 위해선 리더십이 바로 서야 한다. 추경 같은 단기 처방만으론 최근의 위기를 헤쳐 나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노사정의 통 큰 결단이 절실하다.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지금의 국회선진화법 체제에선 야당이 반대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조”라며 “정치권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침체된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도 시급하다. 좋은 일자리는 결국 기업이 투자를 통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정근 교수는 “기업이 만드는 일자리는 세금을 걷을 수 있는 원천인데 정부가 만들려고 하면 재정을 동원해야 한다”며 “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가 적극적인 규제 개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적극적인 경기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정부는 과감하게 재정을 풀고, 한국은행도 제로금리까지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선제적인 통화정책을 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세종=김원배 기자, 김경진 기자 oneb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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