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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과 일하려면 다리가 강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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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규
최형규 기자 중앙일보 부데스크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

중국은 민주 국가인가? 이 질문에 국제 사회는 ‘노’라고 답할 가능성이 크다. 공산당의 일당 독재를 민주적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홍콩의 한 여론조사 기관이 얼마 전 같은 질문을 중국인들에게 했더니 77%가 “민주적”이라고 답했다. 왜 그럴까.

 서방의 민주와 비민주 판단 준거는 주로 직접 선거와 다당제다. 국민의 대표는 선거를 통해 결정돼야 한다는 게 서방의 논리다. 그러나 중국은 선거를 통한 대표보다는 정치 권력 집단, 즉 관료 집단에 대표성을 부여하고 있다. 선거를 통한 대표는 포퓰리즘에 쉽게 빠지기 쉬워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한데 관료 집단은 현장에서 정책을 연구하고 지혜를 구하며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제도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진정한 의미의 민의 대변은 민의의 정책 반영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게 마오쩌둥(毛澤東)의 군중노선이다. 공산 정권 수립 전 혁명의 수단으로 활용됐지만 이제는 ‘연구 조사(調硏)’라는 이름으로 위세를 떨치고 있다.

 군중노선을 가장 잘 활용하는 지도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다. 그가 지난주 주석 취임 이후 처음으로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를 방문했는데 그 방문의 공식 이름은 ‘옌볜 연구조사’다. 단순한 시찰이 아니라 정책을 연구하고 개발하기 위한 현장 학습이라는 의미다. 들에 나가 농민들과 함께 벼 이삭 수를 세고 화장실 혁명을 주문하는 게 그냥 쇼가 아니라는 거다.

 실제로 그의 군중노선 신봉은 거의 중독에 가깝다. 2002년 10월 저장(浙江)성 당서기로 부임하고 2개월 동안 업무의 절반을 현장 방문, 즉 외부 조사연구로 보냈고 취임 9개월 만에 성내 90개 현과 시·구 중 69곳을 돌아봤을 정도다. 2005년 한 해 그는 117일 동안 현장에서 연구 조사를 했다. 2007년 상하이 서기로 부임해서도 3일 만에 푸둥 지역에 대한 제1차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래서 시 주석과 함께하려면 “다리가 강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총서기 취임 전 아예 관료의 연구 조사 제도를 만들기도 했는데 성급 간부는 매년 최소 30일, 시·현급 간부는 최소 60일을 현장을 방문해 연구조사를 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현장을 모르는 공직자는 공직자가 아니라는 법률적 선언이다.

 중화 부흥을 위해 100년 단위로 국가 전략을 세우는 ‘거시적’ 안목도 있지만 현장을 강조하는 ‘미시적’ 섬세함도 돋보이는 게 요즘 중국 정치다. 한국 정치는 국회법 파동이 끝나니 이젠 국정원 해킹 의혹으로 난리다. 모두 현장에 나가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않고 자리에 죽치고 앉아 제 살 궁리만 해서 나온 결과다. 이 참에 중국처럼 공직자 현장 방문 의무화 규정이라도 만들자.

최형규 베이징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