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 난사로 자식 잃은 어머니 "네게 자비 베푸시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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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살점 하나하나가 다 아프다. 나는 예전처럼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너에게 자비를 베푸시길 기도하겠다.”

펠리시아 샌더스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백인우월주의에 빠진 딜런 로프(21)가 흑인 목사와 신도 9명을 무참히 살해한 현장에 있었다. 자신은 죽은 척해서 총격을 피했지만, 자신의 영웅이었던 아들은 총에 맞아 숨졌다. 그러나 그녀가 로프에게 전한 메시지는 ‘용서’였다.

비극의 도시 찰스턴이 용서와 치유의 도시로 변했다. 19일(현지시간) 로프의 보석재판 법정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관례에 따라 가해자에게 직접 얘기할 기회를 받아들인 피해자 유족들이 한 명씩 나왔다. 샌더스도 그중 한명이었다. 로프는 구치소에 감금된 채 화상재판을 받았다. 유족들은 울먹이면서 용서를 말했다. 어머니를 잃은 네이딘 콜리어는 “다시는 엄마에게 얘기할 수 없고 엄마를 안을 수 없겠지만, 나는 너를 용서한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은 이 광경을 “평범한 재판이 상실과 화해의 생생한 증언장이 됐다”고 전했다.

범행이 일어난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 앞에선 수천 명이 모여 희생자들을 애도하며 철야 기도를 했다. 조지프 라일리 찰스턴 시장은 “우리 공동체는 더 단단하게 결속하고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로프가 흑인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는 정황은 미국 사회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한 생존자는 로프가 범행 직전 “(너희 흑인들이) 우리 여자를 강간하고, 우리나라를 차지했다. 너희는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로프가 개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웹사이트에선 백인우월주의를 조장하고 인종분리를 찬양하는 내용이 발견됐다. 사이트에 게시된 사진 속의 그는 성조기를 불태우고 남부연합기를 흔들었다. 남부연합기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노예제 철폐에 반대한 남부연합 정부의 공식 깃발이었다.

한편 남부연합기가 지금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의사당 앞에 나부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첨예한 정치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2012년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밋 롬니가 “그 깃발을 내려야 한다. 그것은 인종적 증오의 상징”이라고 트위터를 날린 것이 계기가 됐다. 그러자 대선 출마를 선언한 잽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플로리다에선 그 깃발을 박물관으로 치워버렸다”며 “사우스캐롤라이나 지도자들이 올바른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공화당이 텃밭으로 여기는 남부의 보수적 백인 유권자 일부에선 남부연합기에 대한 향수가 남아있다. 대부분의 공화당 후보들은 아직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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