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이 당신을 취하게 만든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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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

술잔이 착각을 불러일으켜 자신의 의도보다 훨씬 더 빨리 술을 마실 수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용기의 높이나 형태를 근거로 양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판단이 크게 빗나가는 경우가 많다. 잉글랜드 브리스톨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조사 결과다. 오렌지 주스 잔의 경우에는 그렇게 터무니없는 착각을 해도 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주점에서 술을 마실 때는 문제가 심각하다.

브리스톨대학의 박사과정생 데이비드 트로이가 이끄는 연구팀은 음주자들을 모집해 두 그룹으로 나눴다. 과음의 요인을 알아보려는 목적이었다. 절반에게는 4분의 1, 절반, 4분의 3 지점에 선을 그려 넣은 잔을 줬다. 나머지 절반에게는 선이 없는 잔을 나눠 줬다. 선이 그려진 잔을 가진 사람들은 상대 그룹보다 더 천천히 마셨다. 자신이 마시는 양을 정확히 알면 음주자가 속도를 조절한다는 의미라고 연구팀은 설명한다.

연구팀은 컴퓨터로 간단한 과제를 만들어 액체 양의 정확한 중간지점을 판단하는 피험자들의 능력을 측정했다. 두 가지 형태의 유리잔에 액체를 그려 넣었다. 하나는 측면에 곡선을 넣었고 다른 하나는 곧게 뻗은 형태였다. 유리잔 형태가 질량 판단에 미치는 영향을 테스트하려는 취지였다. 예상대로 직선형보다 곡선형 잔의 중간점을 오판하는 비율이 훨씬 더 높았다.

마지막으로, 연구팀은 주점에서 실험을 실시했다. 3개 주점에서 2주의 주말 동안 팔린 맥주량을 기록했다. 직선형과 곡선형 두 가지 잔을 사용했다. 조사 결과 곧게 뻗은 형태의 잔이 훨씬 적게 팔렸다. 직선형 잔을 이용한 고객이 술을 적게 마신 것은 곡선형 잔을 이용한 그룹보다 맥주의 양을 더 정확하게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연구팀은 주장한다. 그 조사 결과에 기초한 논문이 최근 리버풀에서 열린 2015 영국 심리학회 연차총회에 제출됐다.

“인간은 사실상 결과를 곰곰이 따져서 행동하기보다는 주변 환경에 자동적으로 반응한다”고 트로이 연구원이 말했다. 색깔, 크기 그리고 이 경우엔 잔의 형태 같은 환경적 변수가 인간의 음주 감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벨기에 두벨 잔, 독일의 필스너 비어 부트 잔(부츠 모양 잔), 인도의 페일 에일 스니프터 잔(서양 배 형태) 등은 곡선을 넣은 특제 맥주 잔이다. 이런 잔을 이용하면 술맛이 더 좋아질지 모른다. 하지만 술꾼이 실제 음주량보다 적게 마셨다고 믿게 만드는 재주 또한 뛰어나다. 그리고 많이 마실수록 인지 능력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 모두가 과음을 부르는 요인이다.

파멜라 피크 박사는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의 중독·정신건강 치료시설인 ‘엘리먼츠 비헤이버럴 헬스’의 의사이자 선임 학술고문이다. 간단한 변화만으로 개인들이 더 건강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길고 좁은 잔에 술을 따라 마셔라. 짧고 넓거나 곡선형 잔을 사용하면 실제보다 적게 마신다고 느낀다”고 피크 박사가 말했다. “모두 마인드 게임이다.”

글=리제테 보렐리 뉴스위크 기자
번역=차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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