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에 꽂힌 3300조 헤지펀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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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글로벌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반대하면서 헤지펀드의 존재감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글로벌 헤지펀드가 운용하는 자금은 올 1분기 기준으로 3조 달러(약 3300조원)에 육박한다. 한국 증시 전체 시가 총액의 두 배 수준이다. 주주가치를 실현하겠다며 행동주의(shareholder activism) 성향을 보이는 헤지펀드도 늘고 있다.

 최근 헤지펀드가 개별 기업에 대한 공세에 주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눈여겨보는 투자 종목은 외환(FX)이다. 외환은 헤지펀드의 오래된 먹잇감이다. ‘헤지펀드의 황제’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85)가 세상에 자신의 이름과 헤지펀드의 위력을 널리 알린 계기다. 소로스는 1992년 영국 파운드화, 1997년 태국 바트화 등을 공격하며 큰 돈을 벌었다. 박재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 금리 인상 시점이 임박함에 따른 일본 엔화 투자(투기) 향방이 헤지펀드 업계의 주요 이슈”라고 분석했다.

  이들의 관심은 현재 일본 엔에 꽂혀있다. 9월쯤 미국 연준(Fed)이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미국 달러가 다시 힘을 얻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헤지펀드 업계는 ‘엔 매도-달러 매수’ 전략을 통해 이익을 내겠다는 태세다. 10일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가 ‘엔저 견제’ 발언을 통해 반격했지만 구두 개입은 하루 밖에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달러당 엔화 가치는 10일 2엔 가까이 반등하며 122엔 대로 올랐지만 11~12일 다시 123엔 대로 떨어졌다. 여전히 ‘엔 매도-달러 매수’ 전략을 유지하는 헤지펀드의 세력이 두텁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헤지펀드가 탄탄대로만 걷고 있지는 않다. 헤지펀드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퇴직연금(캘퍼스)의 행보가 큰 부담이다. 캘퍼스는 지난해 ‘2015년도 자산 배분 계획’을 통해 헤지펀드와 같은 위험자산의 투자를 축소하고, 좀 더 안전성이 높은 부동산 투자 쪽으로 눈을 돌리겠다고 발표했다. 40억 달러(약 4조4000억원)규모의 헤지펀드 자금을 빼고 신규 투자금을 더해 70억 달러(약 7조7000억원)의 부동산을 사겠다는 입장이다. 또 향후 5년간 현재 200여 개 수준의 위탁 운용사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계획도 투자위원회에서 확정될 예정이다. 비용을 아끼는 동시에 업계 내 옥석을 구분하겠다는 전략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캘퍼스를 시작으로 다른 대형 연기금이 비용 문제를 앞세워 헤지펀드 투자·위탁을 줄일지 업계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강병철 기자 bong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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