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2억 수출 사기 당한 5개 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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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가짜 수출서류로 1500억원대 은행 대출을 받은 무역업체가 관세청에 적발됐다. 사기 수법이 3조2000억원의 무역금융 사기 대출을 받아 금융계를 흔든 ‘모뉴엘’을 빼 닮았다. 관세청은 허위수출 자료를 은행에 제출하고 1500억원대 무역금융 대출을 받아온 프런티어 사장 조모(56)씨가 관세법 및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고 11일 밝혔다. 관세청에 따르면 프런티어의 가짜 서류에 속은 기업·SC은행은 모두 1522억원의 무역금융을 대출했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은 조씨가 돌려 막기 식으로 상환했지만 기업은행 307억원, SC은행 22억원은 상환 받지 못했다. 또 308억원을 신용대출 해줬던 국민은행은 대부분을 회수했으나 7억원을 못 받았고 농협도 1억원의 신용대출 잔액을 떼였다. 외환은행도 신용대출이 있었지만 최근 대출금을 회수해 손실을 막았다.

 조씨는 개당 생산원가 2만원인 TV 플라스틱 틀(캐비닛)을 2억원에 수출했다는 식으로 서류를 위조해 은행에서 무역금융을 받아냈다. 무역금융은 정부 공공기관인 무역보험공사가 보증을 해주는 대출이어서 은행들은 큰 의심 없이 대출해준다. 조씨는 이런 허점을 악용해 2006년부터 최근까지 291회에 걸쳐 수출 가격을 부풀려왔지만 은행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한성일 관세청 조사국장은 “초기에는 실제 수출이 60%, 가짜가 40%였는데 최근에는 1%만 실제 수출이고 나머지 99%는 가짜 서류였다”고 말했다.

 조씨는 직접 공장을 운영하지는 않고 주문생산으로 물품을 조달해 본처 명의로 설립한 미국의 P사로 발송한 뒤 국내은행에 허위 수출채권을 매각해 자금을 유용하다가 수출채권의 만기가 되면 위장 수출을 반복해 대출을 상환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이런 식으로 돌려 막기를 하는 바람에 은행들을 깜쪽 같이 속일 수 있었다. 이번에 적발되지 않았으면 사기대출 규모는 더욱 불어나 3조2000억원 규모의 무역금융 사기대출을 받아오다 지난해 10월 적발된 모뉴엘 사태만큼 피해가 커질 뻔했다.

 관세청 조사결과 조씨는 월세 1800만원과 관리비 350만원을 내는 고급빌라에서 내연녀와 내연녀의 자녀 두 명과 함께 살면서 페라리 두 대, 람보르기니 한 대를 포함해 10여 대의 외제차를 굴려왔다. 또 법인카드로 60여 억원의 명품·상품권·금괴를 사들였다고 관세청이 밝혔다. 조씨는 은행에서 대출 받은 자금을 수입대금 명목으로 자신이 관리하는 일본 소재 페이퍼컴퍼니 명의 계좌에 송금한 뒤 이중 28억원을 미국에 거주하는 본처와 자녀 두 명의 주택구입비로 빼돌렸다.

김동호 선임기자 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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