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의 '창비' 젊어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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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국내 진보 지식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 온 계간지 '창작과비평'(이하 창비)이 15일 창간 40주년을 맞는다. 1966년 1월 15일 첫 호가 나왔다.

분단체제론, 민족문학론, 근대의 이중과제론 등 한국 지식사회를 움직인 수많은 담론들이 창비를 통해 생산되고 유통됐다. 군사독재 시절 정권과 맞서며 폐간과 복간을 반복하기도 했다. 어느덧 불혹(不惑)을 맞은 창비가 젊어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백낙청 편집인을 잇는 창비의 두 얼굴 최원식(57.인하대 국문학 교수) 주간과 백영서(53.연세대 사학과 교수.얼굴사진) 부주간이 올해부터 새로운 임무를 맡는다.

백 교수가 신임 편집주간으로 1월1일 취임했다. 문학평론가 진정석(42), 시인 이장욱(38) 씨가 상임편집위원으로 새로 합류했다. 30, 40대의 수혈로 편집진의 평균 나이를 낮췄을 뿐만 아니라 내용상 변화도 모색한다. 이장욱 위원의 경우 전통적 '창비 코드'와는 다른 취향을 선보여온 시인이다.

백 신임 주간은 "젊음과 현장성 강화"를 거듭 강조하면서 "문학창작 현장, 시민운동 현장, 국내를 넘는 동아시아 현장 등의 목소리를 보다 많이 담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동아시아 지역 공동체에 관심이 많은 그는 "동아시아의 비판적 지식인 네트워크를 확산시켜 창비 지면에 담아내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 중 온라인으로 창비 일어판, 중국어판도 낼 예정이다. 새로 편집장을 맡은 염종선씨는 "창비와 다른 목소리도 다양하게 수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창비 30주년인 1996년부터 편집주간을 맡아온 최원식 교수의 새 역할이 주목된다. 창비와 별도 법인으로 만든 '세교연구소'의 이사장으로 6일 취임한다. '세교'는 서교동의 옛 지명. 서교동 일대에서 2003년 9월부터 매월 한 두 차례씩 열어온 '창비 공부모임'을 확대 개편해 창립하는 연구소다. 창비의 '사외 콘텐트 그룹'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주요 목표로 내세운 인문사회과학의 지성과 문학적 상상력의 만남은 창비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창비는 왜 별도 법인의 콘텐트 그룹이 필요한 것일까. 우리가 사는 21세기가 탈냉전.탈이념 등으로 급변하고 있는 때문으로 보인다. 창비가 이뤄온 그동안의 성과는 계승하면서도, 이념의 시대에 크게 활약한 창비의 그릇으로는 다 담기 어려운 새로운 목소리를 수용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미리 배포한 창립취지문은 "현상의 타파를 도모한다는 점에서 진보적이다. 그런데 한반도 분단 현실의 타파와 동떨어진 급진성을 탈구축한다는 점에서는 중도적이기도 하다"고 밝히고 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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