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만나주는 남친에 앙심 '임신 폭로'했지만 법원 "명예훼손 아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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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미혼여성 A씨는 남자친구인 B씨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B씨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B씨의 회사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임신 얘기를 듣고 B씨가 자신을 만나게끔 하려는 계산도 있었다.

A씨는 2012년 11월 B씨의 소개로 알고 지내던 이모씨를 사업상 상담 명목으로 자신의 사무실로 부른 뒤, 이씨에게 스마트폰으로 찍은 임신테스트기 사진을 보여주며 “내가 현재 B씨의 아이를 임신 중”이라고 말했다. 닷새 뒤엔 B씨의 부하 직원 박모씨에게 전화를 걸어 같은 얘기를 했다. 이어 다음 달에는 B씨의 거래처 사람까지 만나 “내가 임신을 했지만 B씨가 만나주지도 않는다”며 “투자 관련해 B씨에게 5000만원을 사기당해 낙태했다”고 주장했다.

나중에 이를 들은 B씨는 A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1심은 “A씨가 B씨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A씨는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은 최근의 사회적 인식에 비춰 B씨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표현이 아니었다”며 “B씨가 만나주지 않는 관계로 그를 만나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를 말하게 됐을 뿐”이라고 항소했다. 2심은 B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4부(부장 임동규)는 3일“‘B씨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것은 가치중립적 표현”이라며 “미혼남녀인 이들이 연인관계였던 점에 비춰봤을 때 이는 사회통념상 사회적 평가가 침해되는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A씨에게 명예훼손을 할 고의성이나 이를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하려는 의도 역시 없었다”며 명예훼손에 대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 A씨가 B씨로부터 5000만원을 사기당하고 낙태를 했다고 말한 부분은 허위사실에 해당돼 명예훼손이 인정된다”며 벌금형 50만원을 선고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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